shuke_detail_101.gif 류미숙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누런 어미 소가 한 마리 있었다. 비단 우리 집 뿐 만 아니라 집집마다 한 마리씩은 있었던 것 같다. 소는 그 집안의 귀중한 재산이나 다름없었으며 일꾼 노릇을 단단히 해서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내 기억으론 아버지께서는 소를 잘 키우셨다. 큼지막한 짐 자전거를 타고 소재지 '맹자정'으로 약주를 드시러 가셨다가 거나하게 취해서 오셔서도 소막에 가시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나서 누구랑 같이 얘길 하실까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소와 대화를 하고 계셨다. 마치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이에 반해 어머니는 닭이나 오리를 잘 건사하셨다. 나무청 한 켠에 둥지를 틀고 있던 어미 닭이, 꼬꼬댁하고 신호를 보내기가 무섭게 우리 남매들은 잽싸게 달려가서 따뜻한 알을 서로 먼저 꺼내려고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마당가 조그맣게 도랑물이 흐르는 곳엔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먹이를 찾아 헤집고 다니다가 해가 떨어지면 한두 마리씩 집으로 들어오곤 했었다. 신작로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 선 미루나무에 조각 구름이 걸려 있을 때, 아버지는 간혹 나에게 소몰이를 시키셨다. 나는 쇠말뚝을 단단히 움켜지고는 '북덕보' 근처로 갔다. 장마가 지난 후에 가 보면 전에는 없던 모래섬이 새로 생겨나 있고, 낮은 곳이 움푹 패여선 깊은 수렁이 생겼다. 북덕보는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 훌륭한 놀이터 장소인데, 근처 둔치에는 소가 먹을 풀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쇠말뚝을 땅에 단단히 박지 않으면 소가 도망 갈 염려가 있으므로 나는, 소를 메 둘 때면 쇠말뚝 박는 일에 갖은 정성을 들인다. 큰 돌멩이를 주워와서 있는 힘껏 내리쳐서 땅 속 깊이 박아 둔다. 뻐꾸기 한가로이 노래하고 물소리 낭랑하게 들린다. 저 멀리 육칠이네 다랭이 논빼미에 심어진 모가 살랑 바람에 춤을 추고, 우리집 황소가 그 큰 눈을 꿈벅이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귀찬게 달라붙는 파리 떼들을 몰아 내느라 연신 꼬리를 움직인다. 적당하게 달구어진 돌무더기 위에 검정 고무신을 벗어 놓고 고만고만한 돌멩이를 주어다가 나 혼자 심심해서 줍음막기(공기놀이) 놀이를 하다가 금새 싫증을 내곤 했다..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몰려와 북덕보가 시끌벅적해진다. 팬티도 안 입은 알몸으로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내애들. 젓 무덤이 밤톨만하게 솟아오른 여자 애들은 차마 옷을 벗지 못하고 입은 채로 풍덩거린다.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나도 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옷을 입은 채로 물 속으로 뛰어 들어 한바탕 놀고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후회를 한다. 옷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심란해지고 한기가 들어 이가 닥닥 부딪혀진다. 궁여지책으로 큰 바위 뒤에 숨어 옷을 벗어서 물기를 꼭 짜서 다시 입는다. 그렇게 한 두 시간쯤 앉아 있으면 어느 정도 옷이 마른다. 뉘엿뉘엿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쇠말뚝을 뽑아 소를 몰고 귀가를 서두른다. 그 때가 언제쯤이었을까?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내가 열 두 서너 살 때였던 것 같다. 그 날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소를 몰고 북덕보로 나갔다가 해가 져서 소를 끌고 집으로 오던 중이었다. 동리에서도 맨 윗집이었던 우리 집 어귀까지 올 때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소가 오던 길을 되돌아서 막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놀란 것은 둘째치고 순간 내 머릿속에는 쇠말뚝을 놓치면 영영 소를 잃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어 고삐를 쥔 손에 힘이 가해졌다. 미루나무가 길게 늘어 선 신작로 길에 들어서자 소는 속력을 내어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고 나는 극도에 달하는 공포심에 어쩔 줄 몰랐다. 아~! 그러나 내가, 가속을 내어 뛰기 시작한 소를 따라서 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고삐를 쥔 채 질질 끌려갔다. 그렇게 얼마쯤 끌려갔을까. 저 만치서 술독을 주렁주렁 매말고 자전거 한 대가 왔다. 나는 힘껏 소리쳤다. '아저씨, 제발 우리 소 좀 잡아 주세요.' 내 목소리는 거의 울음에 가까웠다. 술 배달 아저씨는 우리 소를 잡아 신작로 길 미루나무에 매 주셨다. 나는 그 길로 울면서 집으로 뛰어가서 아버지께 고했다. 아버지에 의해 소막으로 무사히 온 소를 보자 내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어머니가 다가 와서 손. 무릎. 심지어 배까지 상처가 나서 피가 나는 곳을 닦아 주시면서 한마디 하셨다. "바보같이 소 고삐를 놔 버릴 것이지 질질 끌려가서 이 모양이 되었냐"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는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소한테 놀란 후로 나는 소막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끔 나에게 농담처럼 소몰이를 부탁하셨지만 그럴 때면 나는 고개를 세게 저으며 줄행랑을 치곤 하였다. 이제, 나에게 소몰이를 시킬 아버지도 안 계시고, 누런 송아지가 한가로이 풀을 뜯던 내 고향 마을 앞 북덕보도 사라진지 오래다. 장마가 진 요즘 문득 그 때 일이 떠 오르는 것은 왜일까.... ♪ 정태춘의'나 살던 고향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