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편
류미숙
잠시 비가 개인 틈을 타 놀이터에 아이들 손님이 왔네요.
빙빙이 아래 작은 물 웅덩이가 생겼는데
사내 아이 둘이서 막대기로 물 웅덩이를 쑤시며
장난을 치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저러다 옷 버려서 집에 들어가면 아이 엄마들이 된통 야단을 치겠죠.
요 녀석이 빨래 빨아 널어도 안 마른데 날궂이 하고 다닌다고요.
이렇게 비가 오는날이면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요.
가난하고 배고픈 그 시절!
변변한 먹을거리 하나 없고 놀잇감 하나 없던 그때는 산과 들이 온통
놀이터였고,
요즘 아이들은 거들떠도 안 볼 열매들이 우리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던 때였죠.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거예요.
억수로 비가 많이 와서 집 앞 실개천인 '북덕보'가 무너져서 방천이
나고, 곳곳에 물 웅덩이가 생기고,
'정제' 아궁이에 물이 나와서 울 엄마가 양재기로 연신 물을 퍼냈던... 지금 아이들한테 말하면
꾸며낸 이야기라고 도무지 믿지 않을테지요.
비가 오면 그냥 이유없이 좋았어요.
무엇이 그리 좋았던지 미친 사람처럼 비를 맞고 여기저기 쏘다녔어요.
큰 물이 차서 넘실거리는 물가엔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당부하시던
울 엄마의 말씀을 어기고 남동생과 동네 아이들괴 떼를 지어 쏘 다녔던...
야산 술섶을 헤집고 산딸기를 따 먹고, 완두콩만한 냉감을 따서 바늘로
실에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어서 걸고 다녔어요.
그렇게 쏘 다니다가 검정 고무신짝을 물에 빠트려서 그걸 건지려고 물 속에 뛰어 들기도 하고...
한기가 들면 어른들 몰래 담모롱이에서 군불을 지펴서 불을 쪼이고
그러다가 옷에 불구멍이 나서 엄마께 된통 혼쭐이 났던 기억 등등...
이렇게 비가 오는날이면 문득 그 때가 떠 오릅니다.
내가 태어나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결혼을 하여 떠나올 때까지 살았던
고향마을이 사뭇치게 그립습니다.
익산에서 애청자
T. 834-5038
*:* 음악은 김원중의 '바다가 보이는 찻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