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 반 양론이 뜨겁군요.
전화 참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안타깝네요.
호주제 반대하는 이유로 전통의 고수가 주요 요인이더군요.
대화중에는 대가 끊긴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듣다보니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지금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갈등과 고초를 겪고 있는데
소수를 위한 폐지 운동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보여집니다.
게다가 전통의 美風良俗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호주제는 결코 美風良俗이 아닙니다.]
권해효씨께서 말씀하셨듯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기고
창씨개명을 하고
전쟁을 위한 물자와 사람과 여성들을 수탈당하던 그 때에
치욕스럽게 자리한 것이 바로 호주제입니다.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 꼼짝 못하게 하고 수탈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그 불합리한 제도가 어찌 美風良俗이란 말인가요?
기성세대의 지는 해들...
즉
그 발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선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 하여
무조건 조상의 좋은 유업인 양 받아들이고 몸에 익히고 후대에 전달하여야만 사명을 다하는 것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에 의해 지금의 폐단이 형성되어왔습니다.
美風良俗이란? 말 그대로 아름답고 좋은 풍속 아닙니까?
그런데 결코 아름답지도 좋지도 않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가슴앓이하게 한...
더우기 일제시대에는 강제 수탈로 인해
배 곯고 자식 빼앗기는 설움까지 당하게 한 호주제를 美風良俗으로 간주하시는 분들은 무슨 근거로 왜 그러실까요?
일본은 자기네 나라에서는 벌써 오래전에 그 불합리한 제도를 없애고 발번에 발전을 거듭하여 선진국 대열에 서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이씨 조선도, 고려도, 백제나 신라도 아닙니다.
과거에 이땅에 있었고, 지금은 사라진 나라들은
정권을 휘어잡고 권력을 휘두르고자 했던 사람들의 한바탕 놀이판이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민초들의 나라입니다.
[우리 민족이 '白衣民族'이라며 실소를 머금게 하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본래 우리 민족은 색을 사랑하는 민족입니다.
온갖 아름다운 색으로 옷을 물들이고 입어왔던 감각있는 패셔너블한 민족이지요.
'白衣'란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입었던 옷입니다.
그걸 유학이 이 땅에 들어와서 죽은 사람에 대한 지나친 배려(?)를 하면서부터 이씨조선에서 정책적으로 뒤바꾼 것입니다.
고려에서 불교를 국가종교로 내세우고 사찰을 장려했듯, 이조에서는 유교를 국가종교로 정하고 향교를 장려한 것입니다.
아름답던 유색옷을 무색옷으로 바꿔입어야 했던 사람들은 힘 없던 민초들입니다.
백성들은 하찮은 존재로 여겨 무색옷을 입히고, 양반들, 돈 있는 중인들, 궁중의 사람들은 여전히 유색옷을 즐겼습니다.
일제치하를 거치면서 양반이고 중인이고 다 양복으로 바꿔입는 동안 돈 없고 힘 없던 민초들은 여전히 무색옷이나 흰색 옷만을 입고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저 비참한 동족 상잔의 전쟁을 치르면서
해동의 끝에 있는 이 조그만 나라에 유엔군이란 이름으로 외국인들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무색옷이건 흰색옷이건 온통 민초들의 옷밖에는 띄지 않았습니다.
전쟁중에 군인의 눈에 띄는 사람 역시 돈 없고 힘 없는 민초였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은 이 나라 민족은 흰 옷을 즐겨 입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금도 외국에서는 대한민국이라면 잘 몰라도 '아시아 동쪽 땅끝의 흰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면 알아듣는답니다.
이게 바로 '白衣民族'의 진실입니다.
美風良俗을 내세워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시는 것은 많은 어패가 있네요.
바야흐로 이 나라의 美風良俗이 무엇인지 정립할 시기가 온 것같습니다.
여러 면에서 엉뚱하게 미풍양속으로 둔갑해버린 것들을 바로잡을 시기 말입니다.
호주제는 결코 미풍양속이 아님을 반대하시는 분들은 숙지하시고 반대의 이유를 다른데서 찾으셔야 할 줄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호주제를 폐지하면 대가 끊기는 일이 발생할 수가 있으니 반대한다고 하시는 분들께 한 말씀 드리자면
이 땅에는 남자만 삽니까?
딸을 낳으면 서러워하고 아들을 낳고자 별 별 짓을 다하는 여인네들..
그게 왜 그렇게 됐습니까?
자신도 여자이기에
여자의 서러움을 너무 잘 아니까 아들을 낳으려고 한 것이고,
아들을 낳아야 남편에게 사랑받고 시집에서 대우를 받았으니 그런것이고,
그 아들로 인해 자신이 겪는 여자요 며느리의 설움을 풀어보려는 희망때문에 그럴 것이고
종국에는 자신의 며느리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을 대물림하기 위함입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요?
고부갈등, 시누이 올케의 갈등이 왜 생겼다고 보십니까?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내 아들, 우리 오빠, 내 남동생..이 있어야만 여자는 그나마 기를 펴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생긴 폐단입니다.
남편은 피붙이 앞에서는 아내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우리 사회의 나쁜 폐단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폐단들이 남성우월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호주제는 남성우월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폐지하면 대가 끊긴다니요?
딸만 내리 일곱을 낳은 여인이 이십여년을 시집에서 종살이하듯 살고도 쫓겨나야 했던 아픔을 아십니까?
바로 그 대를 못 이었다는 이유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들, 딸 성의 구별은 남자의 정자가 할 탓이라는 걸 요즘 사람들은 모르지 않습니다.
그 여인은 쫓겨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문제였지요.
그 남편은 재혼 후 딸을 넷이나 더 낳고도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강지처는 자신의 위치를 회복할 수 없었지요.
자신의 자리는 이미 없어졌으니까요.
또한 그 남편은 딸을 열 한명이나 두고도 제삿밥을 못얻어먹는 신세가 됐습니다.
출가외인이라 하여 그 딸들은 시집제사에 등골 휘게 일하는 신세가 됐지만 어느 누구 하나 자기 부모의 제사는 모실 수가 없었다는 얘깁니다.
열 한명의 딸들의 아버지는 대가 끊김은 물론 자신의 조강지처를 버린 죄를 지은데다 제삿밥까지 못얻어먹는 신세가 됐는데 과연 호주제를 좋은 제도라고 할까요?
버림받은 일곱 딸의 어머니는 호주제를 좋은 제도라고 할까요?
딸 넷의 어머니인 새 부인은 전처 소생의 일곱 딸과 자신의 네 딸을 키우며 아들 못 낳은 죄로 숨 죽이며 살았는데 과연 호주제가 좋은 제도라고 할까요?
열 한명의 딸들은 자기들 역시 남편의 성을 가진 아들을 낳아야 되는 부담 속에 살며 부모님의 제사조차 모시지 못하고 시집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과연 호주제를 찬성할까요?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라는 것이 상식적이어야 하고 대중의 인지도와 맞아떨어져야 합리화되는 것이 일반입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시려거든
위와같은 불합리한 이유를 내세우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구태의연한 일부 구세대의 옹고집으로밖에는 비쳐지질 않습니다.
호주제 폐지를 찬성하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폐지하여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법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개정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찬성하시는 분들은 폐지 이후에 초래될 소란을 염두에 두시고 그러시는 건지...
또한 무조건 여자라 해서 여성의 문제로 간주하고 찬성하시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당했던 억울함때문에 한풀이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보셔야 할 겁니다.
이 문제에도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가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 법을 폐지하면 뒤늦게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 그 법을 제정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법 개정이란 것도 염두에 두시면 어떠실지...
호주제 폐지가 아니라 성 평등과 가정 복지를 위해 최대한 고려해서 개정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세대주는 한 가구를 대표하는 사람이더군요.
남자도 여자도 자식도 분가하여 일가구를 꾸리고 주민등록 전입만 하면 세대주가 되더라구요.
그런 와중에 호주제가 아예 폐지된다면 정말 족보 물구나무 서는 일이나(물론 호주제때문에도 묾구나무 서기는 하지만)
가족인지 친척인지 알아볼 수 없게 되어 (호적 등초본도 개별로 떼게 되겠지요)
예를 들어 수사하는 경찰에서 범인 색출에 애로가 있다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가출했을 경우 오랜 기간이 지나면 주민등록이 말소되는데 호적에 누구 호주밑에 누구라는 형식의 등재가 없다면 후일 그 사람은 완벽한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됩니다.
미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미아로 신고하고 여러 해가 흘러 부모가 늙고 병들어 죽거나 주민등록에서 말소된 상태라면
후일 그 미아가 커서 부모를 우연히 찾게 되었다해도 자신의 호적을 복적시키는 일이 엄청 힘들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우라면 좋겠구요, 잘 못 알고 있다면 그냥 무시해버리세요.
어쨌든 제가 보기엔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가 많은 것같아서 걱정됩니다.
중지를 모아 혜안으로 적절한 의견을 내서 좋게 해결되면 정말 바람직할 것같습니다.
방송 듣다가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여성시대 가족들..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