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감춰둔 사람들의 흐느낌이 어색하지 않은 오늘입니다. 예고없이 찾아드는 이별의 아픔도 잠시, 어느새 십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아빠를 기억할 만한 기억의 끈은 집안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버지라고 한번쯤 불러드릴 수도 있었을텐데, 철이없던 그때 그시절엔 아빠를 부르기가 겁이난적이 많았었기에, 한번도 아빠께 아버지란 호칭을 불러보지 못했었습니다. 아빠의 얼굴은 너무나 어두웠고, 무서웠고, 술때문에 언제나 도망다녀야했던 예전의 기억때문에, 지금도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면 깜짝 놀라기도 한답니다.
애기아빠를 잘 따르는 두 아들들을 보면서 저는 부러움의 눈빛을 감출 수없었던 적이 참 많습니다. 아빠의 넓은 가슴에 안겨서 재롱을 떠는 큰아들의 모습이나, 아빠의 두 손을 잡고 가게에 들어가려는 작은 아이 떼쓰는 모습들은 너무나 부러웠고, 또 행복해 보였으니까요. 큰딸이라는 어렵고도 불편했던 저의 위치가 어쩌면 아빠와의 거리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항상 그렇듯 저와 아빠사이엔 표현하기 힘든 장벽이 쌓여져 있었으니까요. 아빠께 용돈 천 원을 타기까지 얼마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두 손은 떨렸던지, "아빠, 저 ... 저기... 용돈좀 주세요."라는 흔한 말을 하는데도 몇번의 연습이 필요했을만큼 저에게 있어 아빠의 존재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고, 무서운 분이셨답니다.
술을 드시지 않으실땐 100원짜리 하나까지 아까워서 쓰지 못하셨던 친정아버지. 술만 드셨다하면 온 집안식구들은 아빠의 술주정때문에 공포에 떨어야했고, 계절에 관계없이 여기저기로 아빠를 피해서 도망하기 바빴으니까요. 한겨울에 맨발로 눈밭을 뛰어보기도 자주였고, 어둠속에서 달려가다가 넘어져 다치는데도 익숙할만큼 아빠의 존재가 우리들에게 기억되기까지 참 커다란 아픔이 많았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 우리 딸이에요. 아들이 둘이나 되는데, 욕심도 많죠? 아빠, 그래도 저보다 우리 딸이 정말 예쁘죠? 이정도면 성공한거죠? 네, 아빠?"
"아빠, 고기좀 사주세요. 아빠큰딸이 요즘 살기가 힘들어 고기를 못먹었더니, 여기 좀 보세요. 에구, 살이 쪽~빠졌네.. 고기 사주실거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아빠는, 아니 아버지는 어디에도 안계십니다. 벌써 십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는데도, 가끔은 어딘가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지겹던 아빠의 그 잔소리가 들리는 듯, 문득문득 그리움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한답니다. 당신을 위한 투자는 단 돈 100원도 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요즘은 왜 그렇게 "아빠"를 부르고 싶은 날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친구들한테 제발 우리아빠 안보고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면서 투정부리던 저였습니다. 술때문에 가족들 힘들게 하시는 아빠가 너무도 미워서 엄마께 이혼해버리라며 졸라대던 저였습니다. 친구들 아빠는 자가용도 있고 멋있는데, 우리 아빠는 자전거밖에 없으시고, 흰머리가 많아서 늙어보여서 창피하다며,초등학교에 다녔던 저에게 비가 많이 오던 날 우산을 들고 우리교실까지 찾아오신 아빠를 누군지 모른다며 숨어버린 저였습니다. 저는 그렇게 아빠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고, 피하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서야 철이 들어가고 있는걸까요? 왜 이렇게 아빠가 그립고, 보고싶고, 만나서 안겨보고 싶은지...
아들이 귀하던 저희집은 언제나 막내아들이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바빴고, 그때문에 딸들의 스트레스가 참 많았었습니다. 고기도 몰래 막내동생만 주셨던 아빠, 그 비쌌던 컴퓨터도 막내아들을 위해 이백만원이 넘는 큰돈을 주시고 사주셨던 아빠. 큰딸이 결혼해서 아들을 둘이나 낳은지 하늘에서라도 알고 계실까요?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그렇게도 아들아들하시며 딸들보다 아들을 이뻐하셨었는데....
이제 5개월이 되는 우리 막내딸 예지가 조금있으면 "아빠, 아빠"라는 말을 배울생각을 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작은 이슬방울이 있답니다.
너무나 불러보고 싶은 그 이름, 아빠, 그리고 아버지...
삶의 가난이란 고통을 체험하셨던 아빠께서는 언제나 쌀 한톨이라도 아껴야하신다면서, 물 한방울까지 절약하시면서 자린고비라는 별명이 붙으실만큼 엄청난 구두쇠셨습니다. 그런 아빠가 계셨기에 저희 육남매가 지금까지 이렇듯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불러도 듣지 못하실 아버지지만, 보고 싶어도 만나뵙지 못할 머나먼 나라에 계시는 아버지지만, 너무나 그리운 아빠이기에, 오늘만큼이라도 큰딸이 띄우는 이 작은 종이비행기를 아빠께 띄워봅니다.
우리 큰딸이 참 잘 자라주었구나..하시는 아빠의 음성을 꿈꾸면서....
모 선경(남원시 주천면 용담리 257-6번지 5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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