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와 전쟁
강 명 자
처음엔 그 여린 씨앗이 싹을 틔워 나온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서 그냥 두었는데 지금은 온 밭을 잡초들이 점령을 하였다. 몇 배 더 웃자란 잡초들. 넓은 집 주변이 온통 잡초 밭으로 변해 가는 것을 그냥 방치 할 수만 없어서 호미를 들고 잡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풀을 자주 뽑아 주어야 하는데 놀기 삼아 뽑으면 되리라 여겼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몇 차례 비가 오더니만 잡초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좀 뽑았다 싶은데 며칠후면 어느새 새 풀이 한 뼘씩 올라서고 있었다. 근방 마을 사람들이 잡초가 무섭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그때는 건성으로 들었는데 지금은 실감할 정도가 아니라 무섭다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와서보고는 뿌리째 죽는 제초제를 하라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기들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쉬운 방법으로 잡초를 무자비하게 죽일까 생각을 했었는데 여기 저기 논두렁, 밭 두렁이 누렇게 황폐한 모습의 두렁을 볼 때마다 농촌의 푸른 이미지가 금방 달아난 듯 하여 귀찮아도 될 수 있으면 약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다. 자연보호를 위해 남다른 실천을 앞세우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 작은 가족들 닭, 거위, 오리들이 돌아다니는데 살생 위험도 있고 독한 약으로 누렇게 말라죽는 고통을 주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몇 센티도 안되게 자란 오이며 토마토, 그리고 가지들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잡초를 제거하고 나면 한나절이 금새 지나간다. 또 다른 곳에는 가시랑 풀, 쇠비름,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들이 넝쿨을 쭉쭉 뻗으며 몇 배 더 커 있고 새로 심은 대추나무 가지 위로 꽁꽁 감아 올라가는 이름 모를 풀들이 신나게 너울거리고 있다. 밭 경계선을 옆으로 붙여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이웃들에게 잡초와 전쟁중이라고 표현을 자주 하고 있었다.
며칠 간 내리는 비가 끝나고 난 뒤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잡초와 싸움하는 것을 포기하여야 했다. 남이 뭐라고 하던 그냥 내버려 두어 잡초들이 제멋대로 커보란 듯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넓은 땅이 잡초로 가득했다. 잡풀이 내 키만큼 높이 큰 것을 보고 "잡초왕국이 되었군"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다 보니 닭, 오리, 집을 가려면 장화를 신어야 하고 뱀이 나타날까 늘 걱정이 되었다.
흙 냄새와 싱싱한 풀 냄새를 맡으면서 힘들게 뽑는 일이 자연철학도 같은 마음이 들거나 동양 철학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닫는 일이 된다는 생각으로 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침, 저녁으로 아직은 시원한 어느 날 허리까지 올라오는 잡초를 본 아랫마을에 사시는 당 숙부님이 풀 베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는 하루종일 말끔하게 제거를 했다.
잡초들이 넘어진 그 뒷자리를 보다가 커다란 방아깨비 메뚜기를 보고 놀랐다. 커다란 메뚜기가 어릴 적 친구를 보듯 반가웠다. 제초제 농약을 치지 않기를 잘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나무나 풀들이 신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새롭게 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며칠 못 가서 또 왕성한 힘을 자랑하듯 영양도 튼실한 잡초는 지칠 줄 모르고 쭉쭉 뻗어 나간다.
손으로 움켜잡아 뽑으려고 하니 지난 번 보다 더 억세져 있음을 느꼈다. 그들 나름대로 맘껏 자란 힘을 보여주면서 바람에 춤추고 있었다. 사람들이 잡초라고 이름을 붙였으니까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투로 그들은 나에게 의젓하게 보이려고 힘을 주는 것 같았다. 풀벌레들과 온갖 풀들에게 가장 좋은 땅을 마련해 준 일밖에 되지 않아 금년농사는 헛되이 짓지나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잡초들을 보면서 잡초처럼 살아야 한다는 하늘의 말씀이 무성한풀들을 쓰다듬어 주듯 불어오는 바람결에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