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우리님들~!
하늘이 너무도 맑고 바람도 단 날!
이런 날은 아무도 죄를 지을 수 없을 것 같다던 해인수녀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오훕니다.
장미 송이만큼 탐스럽게 핀 하얀 치자꽃이 그윽한 향기로 코 끝을 간지
럽히고, 바람의 산들거림에 베란다에 매달린 풍경은 맑디맑은 소리를 냅니다.
어젯밤에 저는, 큰 딸아이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남편마저 당직
을 서는 바람에, 작은 딸아이와 집에 남게 되었답니다.
처음엔 홀가분한 마음 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안
에 번지기 시작하는 공허함에 견딜수가 없었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 고통을
어떻게 감당해 낼까~!
아마도 심한 스트레스에 빠지거나 우울증에 걸려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같이 부데끼며 살땐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에 휩싸였어요.
때로는 남편과 아이들이 내게 피곤함을 안겨주고 힘들게 하지만, 막상 이
들이 곁에 없으니 얼마나 허전하던지요.
이래서 '있을때 잘해'란 대중 가요도 생겼나 봅니다.
늦은 시간까지 여기저기 기웃 거리다가 잠을 청했습니다.
막 잠이 들락말락할 무렵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지요.
"엄마, 이 시간까지 잠 안 자고 뭐 하슈? 아빠도 안 계시고 엄마 좋제?
여기 지금 제주도 르네상스호텔이야"
딸 아이의 장난스런 전화였습니다.
"응, 그래. 재밌니? 밥은 먹었어? "
나의 물음에 아이는 하나도 재미가 없다고 심통이 난듯 말합니다.
"왜 재미가 없을까? 어쨌든 재미있게 놀고 잘 먹고 잘 지내다 오렴~"
아마도 아이가 묵고 있는 호텔은 제주 시내에 자리잡은 호텔인가 봅니다.
선생님들께서 밖으로 못 나가게 단속을 하니 아이들이 심술이 난 모양이더군요.
제주 시내를 활보하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호텔 복도에서 말뚝박기만 했다더군요.
우리 가족중에, 큰 딸아이 녀석이 제일 먼저 비행기를 타 보고 제주도에
도 처음으로 갔나봅니다.
언젠가 알고 지내는 분이 그 곳엘 다녀와서 얼마나 많이 자랑을 늘어
놓던지, 샘이 난 저는 당장에 제주도 여행 적금을 다 들었지 뭡니까?
얼추 일백만원 정도가 모였으니 제주도 여행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
마냥 신이 납니다.
여행을 간 아이가 돌아 오려면 아직도 두밤이나 더 자야 합니다.
오늘밤엔 남편이 집에 들어 오겠지만 그 녀석이 빠진 빈자리는 허전하겠지요.
좋은 우리님들~!
오늘 남은 시간도 뽀송뽀송 하시길 바라면서 두서없는 글을 접을까 합니다.
2003년 6월 4일
익산시 영등동 우미 A 103/201
류 미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