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마음아파 하시지 마세요.저는 행복하답니다.

가족중에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원망함이 없이 그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저도 철없던 시절 저의 꿈을 펼쳐볼수 없음을 원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폐암으로 투병중에 계실때 아버지께 저는 미대에 진학하고 싶고, 몇일후에 대입시험치르러 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몇일간 밤낮을 심사숙고하시더니 심각하게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순아! 아빠도 미대에 가고 싶은 꿈을 접었기에 너의 마음 어떨지 알겠고,너희들에게만큼은 꿈을 접지 않기를 바래왔는데, 지금 아빠의 결정이 너에게는 참으로 미안하구나! 지금, 할아버지께서 편챦으신데다 상할머님과 할머님께서도 생활을 하셔야 하지, 그리고 전주에 있는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도 학교에 다녀야 되는데, 아빠의 월급으로는 무리인것 같구나! 진순이 네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할때 아빠,엄마 마음 아파했던것은 관두고라도 할아버지께서도 몹시 마음아파하셨단다.그런데, 너의 하고자 하는 꿈마저 접으라고 강요는 못한다만 아빠의 마음 조금만 헤아려 주지 않으련!"하시며 저를 부여잡으시고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앞에서 저는 저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주산1급,부기2급,한타2급,영타3급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터였기에 직장생활을 곧바로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방에 들어가게되면 눈에 띄는 화구들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하기도 하면서 첫월급을 타게 되었고 저는 부모님께 월급봉투를 가져다 드렸지요. 저의 월급봉투를 받으신 부모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더니 부모님께서는 다시 저에게 월급봉투를 내밀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진순아! 아빠 엄마는 너의 꿈을 접고 받은 월급을 받을수 없으며, 너스스로 월급받아가며 너 하고 싶은것 할수 있으면 하거라." 그순간 저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떨쳐버릴수 있었고 그이후로 저는 저의 꿈을 접은거에 대하여 한순간도 후회해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결혼을 하면서 꽃밭에 물자세를 들여놓고 예쁘게 색칠을 하고 후회해본적 없던 그림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에 우울함이 찾아들적에 친정부모님의 도움을 바탕으로 주유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년에 한번씩 도색을 하게되는 주유소 외벽이 저에게는 아주 좋은 이젤이 되어 주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장미주유소라고 이름을 지어 주셨던터라 저는 주유소 외벽에 정열적으로 활짝핀 장미꽃넝쿨을 그려넣었지요. 예쁘게 채워진 저의 화폭을 보신 아버님께서 저몰래 눈시울을 적시 는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저의 이젤은 크기가 대화가들이 가져보지 못하는 아주 큰 이젤이었고 매년 주어지는 좋은 기회의 이젤이었으며 대한민국의 모든이에게 개방이 되어있는 저만의 화폭이 되었습니다. 몇일의 작업을 하여야 채워지는 화폭에 백조의 호수도 표현했고, 아름다운 봄의 전령사 복사꽃이 만발한 우리내 강산을 옮겨 놓기도 했으며, 아이들의 뜻을 따라 피어오르는 흑장미도 화폭에 심었놓고 올해는 무엇을 그려넣을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에만 존재하는 자식에 대한 표현할수 없었던 한없는 사랑을 그려 넣을수 있을지, 그것이 가능한 일이 될지. 이제는 부모님께 저의 마음을 표현할수 있습니다. 자식이 무엇인가에 고파할때 채워주지 못하는 심정이 어떤지 이제 제가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이나마 헤아릴것도 같은데, 이제는 부모님의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어머님께서 당뇨가 있으신데 또다른 합병증으로 인하여 차가운곳에는 항시 조심하셔야 된답니다. 한방병원에서 물리치료와 침으로 치료하시고 계시는데 하루빨리 완쾌되시어 아버님과의 못다한 여행도 하시며 남은 여생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 사랑합니다. 전북 부안군 줄포면 신리 727-36 063:581-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