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청양에 사는 정채영입니다. 기억나시나요?
진행자님, 그리고 이 작가님 매일 사연 잘 듣고 있습니다.
글주변이 없어 사연을 띄워보는것이 그리 쉽지많은 않은일이네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5월입니다.
조금더 따사로운 햇살을 맛볼여유도없이 여름이란 계절은 성급하게 우리곁을 다가오려 하는것같아요.
5월의 싱그러움보다 더 상큼하고 풋풋한 초등학교 아이들이 이제막 수업이 끝났는지 일제히 교문밖을 빠져나오며 삼삼오오 짝을지어 장난치는 아이, 고함지르는 아이, 학교앞 문방구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연신 빨아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20여년전 그 천진난만했던 그때의 국민학교 시절로 되 돌아가려하는군요.
지금은 내가 자라고 컸던 그 고향에 살진 않지만 언제나 그 고향과 함께 숨쉬며 고향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 전 어느새 고향땅에 도착해있습니다.
완주군 봉동읍 그중에서도 봉실산을 바라보며 용이 바위에 앉아있다 하늘로 승천했다하여 붙여진 용암리라는 마을
그 동네사람들은 하나같이 농사일을 생업으로하며 오직 흙을 벗삼아 정직하고 살면서 정많기로 소문난 동네였습니다.
순박하고 정많은 사람들이었기에 아버지 생신날 아침 저에게는 꼭 해야하는 일이 있었지요
아침일찍 일어나 동네아저씨들이 들녁에 나가기전 저는 짐자전거를 타고 일일이 동네 집집마다 들러 "오늘 아버지 생신인데 아침 식사하러 오시래요" 라는 말을 하는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그땐 정말 이상하게 그분들이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하나같이 아침식사를 하시러 저의 집을 방문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시고는 또 바쁘게 각자의 일터로 향하고 그렇게 한참이 지난후에야 어린 우리들이 기다리던 맛있는 만찬시간이 돌아왔지요
모내기를 하는 5월이되면 아버지 어머니는 품앗이 인원을 확보하기위해 동분서주 열심히 동네 모내기를 쫒아다니시며 일을 도와드리셨고, 그 결과로 우리집 모내기가 시작되는날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우리논에 들어오셔서 모를 찧는 일부터 일은 시작됩니다.
여자는 늙어도 여자라고 아주머니들은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살태우기는 싫으셨는지 창이 긴 모자를 눌러쓰고 수건을 길게 목에 두르시고, 거머리에 물리지않으려고 몸빼바지를 길게내리고 바지 밑단을 고무줄로 칭칭 동여매시고서야 일을 시작하셨죠
저는 항상 모내기때 할일을 저 스스로 너무 잘알았기에 아버지가 뭐라 말씀하기전에 이미 넓다란 천조각을 네모나게 잘라 그위에 모를 싣고 다니며 모가 모자라는 장소에 재빠르게 배달해 주는일을 도맡아 했지요.
오전이 지나 오후가 되면 찬거리로 가져온 막걸리에 하나둘씩 취해 흥은 점점 무르익어가고 그중 창이나 제법 하시는 분은 모심는 양쪽 끝에서 모가 똑바로 심어지도록 모쟁이라는 것을 도맡아 하시며 신명나는 트롯트며 창을 부르시기 시작합니다. 모를 심던 분들은 이에 같이 흥이 나셔서 따라부르기도하고, 또 독창도 서슴치 않습니다. 그렇게해도 누구하나 흉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그때 그분들이 그 뜨거운 햇볕아래 하루종일 허리 한번 펴지못하고 일하면서도 버텼던것은 바로 이 신명나는 노래자락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이런 모습들은 머언 옛날 조선시대에나 있었음직한 형상으로만 기억될뿐 세월의 흐름속에 모내기철 즐비하게 늘어서있던 사람들대신 커다란 트랙터며, 이앙기가 굉음을 뿜으며 이논저논을 휘젓고 있고
논두렁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에서 어머니가 해오신 찬거리대신 이젠 중국집에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손쉽게 짜장면 등을 시켜드시는 모습을 보고 세월 참 많이 변하고 편해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 그 모든 추억들이 봄날의 아지랭이처럼 점점 어른거리며 그 기억마저도 희미해져 갈 뿐입니다.
현대공단 입주로인해 그 동네를 떠나와서 산지 10여년이 훌쩍 넘어버렸고 가끔 전주에 볼일이 있을라치면 저는 억지로라도 고향길을 지나쳐서 가곤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제가 느끼고 싶고 안기고 싶은 제 어릴적 향수가 뭍어나는 고향은 아니었습니다.
차한대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던 그 좁디좁은 신작로길은 이제 8차선 아스팔트길로 시원스레 뜷여있고, 동네 뒷편 왕소나무골은 이제 그 무성했던 나무들이 언제 있었냐싶게 회색빛으로 물든 시멘트 바닥위에 커다란 건물들과 차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어 더이상의 향수를 기대할수 없게 되어버렸더군요.
지금처럼 캠코더라는게 예전에도 있었음 동네 곳곳을 찍어 놓았을텐데...
그저 아쉬울뿐이군요.
다행히 제가 근무하는 곳은 시골의 한적한 농촌마을이라서 그나마 어릴적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긴합니다.
이제 저는 소박한 꿈을 하나 가지게 되었습니다.
산좋고 물좋은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 터를 잡아 그곳에 집을 짓고 앞마당 텃밭에 땅을 일구어 상추, 배추, 고추 등 채소를 심어놓고, 집 뒤편엔 닭, 오리 등 가축을 키워 나를 찾아주는 친구,지인들이 방문하면 농약을 쓰지않은 상추, 고추를 밥상에 올려주고, 토종닭 한마리를 얼른 잡아 그안에 대추, 밤등을 넣어 맛있게 대접해주어 그들이 다시 찾을수 있게 푸짐한 밥상을 내주고 싶습니다.
이꿈을 펼치기위해 저는 오늘도 성실과 근면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정채영
충남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8
011-9217-3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