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하셨어요?

한달 전 어느 날이었어요. 달력을 보니 14일 이지 뭐예요? `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있었더니, 내일이 바로 스승의 날이구나. 큰일 났네, 야 밤에 선물 사러 나갈 수도 없고...` 그래서 제가 쓸려고 사놓은 스킨세트를 포장하고, 예쁜 편지지 골라서 올망졸망 `선생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쓰고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언니에게 내일이 스승의 날이라고 알려주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부산 언니왈 (위풍당당 그녀에 나오는 부산 사투리 톤으로) `니 미쳤나, 오늘은 4월 14일이다. 와! 니는 스승의 날 선물을 한 달전 부터 준비하네. 니 참 대단하다.` 그러지 뭐예요. 이것 참 쑥스럽구만... 그렇게 부산을 떤지가 엊그제 같은데 놀기 좋은 봄 날씨 속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보니 바로 코 앞에 스승의 날이 닥쳐 온 거예요. 어쩌지? 고민만 하다가 문뜩 유치원 시간표를 봤는데, 어라, 이게 왠일이예요? 교육자의 날인 5월 15일은 휴원한다고 적혀져 있지 뭐예요. 스승의 날 휴원을 한다는 것은 선물을 아예 받지 않겠다는 뜻 아니 겠어요? 가정의 달 5월은 안그래도 빨간날이 많아 한달 출석일이 20일에도 채 미치지 못해 억울했는데, 그나마 스승의 날 또 쉰다고 생각하니 이미 낸 회비가 아깝기는 했지만 내심 양심적인 교육자들이구나. 흐뭇했지요. 그래서 5월 13일날 밤에 생각했지요. `스승의 날은 휴원이니까 내일, 14일날 선생님께 감사의 편지라도 써서 보내자!` 그런데 4살짜리 우리 아들이 편지를 쓰겠어요, 낯 간지럽게 제가 편지를 써서 보내겠어요. 그래서 편지 대신 종이로 카네이션 꽃을 만들기 시작 했지요. 만들다 보니 재미있어서 4송이나 만들었어요. 담임선생님, 원감선생님, 원장선생님, 그리고 아침마다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 기사 아저씨까지 이렇게 4송이의 종이꽃을 만들고 나니까, 14일 내일 아침이 막 기다려 지는거예요. 14일 아침 이렇게 소박한 종이 꽃을 들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5,6세반 엄마들은 난리가 난거예요. 보기에도 탐스러워보이는 꽃바구니에, 커다란 선물상자가 여러개... 다들 13일 아침까지만 해도 선물은 무슨 선물, 선물준비는 생각도 안 한다더니... 어느새 이렇게 화려한 선물 준비를 해 놓았단 말인가? 살을 저미는 배신감도 잠시, 우리 아이를 선생님 눈 밖에 나게 하면 안되겠다는 `필`이 팍 와 꽂히는 거예요. 그래서 얼른 집으로 다시 들어가 집안에 선물이 될만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쫘악 흩어 보았죠. 다행히 지난 설에 친척들에게 돌리려고 산 양말 세트가 포장된 체로 있었어요. 여자용 양말2세트와 남자용 양말 2세트를 꺼내서 전날 만든 종이꽃을 붙여가지고 허겁지겁 아이 가방에 넣어 보냈죠. 후다닥이지만 그래도 스승의 날 선물을 했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그나마의 선물도 안 했더라면 오늘 하루 종일, 아니 어쩌면 추석 명적이 되기전까지 `혹시 우리아이가 선생님 눈 밖에 나지나 않을까?` 또는 ` 선생님의 사랑을 덜 받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살았을지도 몰라요. 저의 임기 응변이 너무나 자랑스러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저의 무용담을 들은 남편 왈 `근데 네 이름은 적었냐?` 아! 맞다. 종이꽃에 `선생님 고맙습니다.`가 적혀져 있길래 다른 메모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누가 드립니다`라고 적는 걸 빼먹은거 있죠. 아, 이런 바보, 선물을 하면 뭘해 누가 줬는지도 모르는데.. 그때 부터 또 자책이 되더니만 다행히 오후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선물이랑 꽃이랑 잘 받았노라고... 아 , 다 행 이 다. 정 말. 저는요. 선생님과 학생이 계약관계가 아닌 순수한 인간으로서 만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라고 여기는 학부형 중의 하나인데요. 그래도 무슨 무슨 날에는 또 남들 처럼 쿵짝을 맞춰줘야 안심이 되네요. 이것도 병일가요? 전형적인 치맛바람 고질병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3가 서곡 대림 APT 103동 902호 903-8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