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님, 윤승희씨, 조형곤씨 안녕하세요?
여성시대에서 '사랑을 싣고 간 간장게장' 방송을 해주신 덕에
요즘 친정집에 전화를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친정 어머님이 아주 좋아하세요. 고맙습니다.
오늘은 제 어릴 적 얘기를 들려드릴까 해요.
초등학교 1학년때의 일이었습니다.
벌써 35년 전의 일이군요.
그 때 제 어머님은 넷째를 출산하신 후 몸이 쇠약해져서
외할머님이 저희 집을 돌봐주시고 계셨지요.
다섯 형제와 부모님과 외할머니와 더부살이 하던 큰 집 오빠까지
저희 집에는 아홉 명의 식구가 있었답니다.
방 세개짜리 아담한 한옥이었는데요.
부모님이 작은 방 하나를 쓰시고,
좀 더 큰 방은 외할머니와 우리 형제들이 쓰고,
쌀 뒤주와 재봉틀이 있는 딱 한 사람이 잘 수 있던 방을
사촌 오빠가 썼답니다.
(그 방 주인은 항상 바뀌었어요. 먼 친척 언니라든가 외삼촌이라든가등등)
아버지는 모 회사의 부장이셨는데, 월급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우리는 정말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했답니다.
당시 우리 집은 진밭다리 바로 옆에 있었어요.
지금은 복개되어 상가가 즐비하지만,
그 때는 다리 밑에서 몽둥이로 개 잡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았던지...
전주국민학교에 갓 입학한 저는
먼 거리를 항상 외할머니와 걸어다녔답니다.
모래내를 지나
철둑을 넘어 고물상을 지나
옛날 서중 로타리를 지나
중앙시장을 지나
전매청을 지나
전주국민학교로 가는 여정이었지요.
어느 날 외할머니를 졸라 예쁜 운동화를 한 켤레 샀습니다.
오래 신으라고 발보다 큰 것을 사주셨어요.
얼마나 좋았던지 잘 때도 품에 안고 잤지요.
그런데 진밭다리 밑에서 어른들이 개를 잡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그 잔혹함에 놀라 달아나다 그만
다리 밑으로 그 헐렁한 예쁜 운동화 한 짝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무정한 물은 제 운동화를 사정없이 밀고 흘러가버리더군요.
가족들에겐 차마 잃어버렸단 말을 못하고
예전에 신던 낡은 운동화를 몰래 신고 학교에 가야 했어요.
발 앞부리와 뒤꿈치가 닳을대로 닳아서 구멍이 살짝 났는데도 신고 다닐만 했어요.
가족이 많고 아이들이 많으니 어른들은 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장마가 시작되었어요.
물론 등 하교길에 제 낡은 운동화 속에선 발가락이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철벅거리는 그 싸늘한 느낌과 진흙이 밀려들어와 발가락 사이에 끼는 게 너무 싫었지요.
그래서...
아이들 적엔 왜 그리 새로운 시도를 잘 하는지...
며칠을 그렇게 지낸 제가 그만 등교길에
며칠동안 젖어있던 운동화를 벗어 손에 들고는
맨발로 학교를 갔지 뭡니까?
그런데 하필 항상 다니던 코스로 가지 않고
언젠가 외할머니가 시장 가실 때 데려갔던 지름길인
소방서 옆 골목길을 택했던 겁니다.
그 길에 어른 손가락만한 굵기의 지렁이들이 마치 누가 일부러 뿌려놓은 듯 널려있었습니다.
하긴 당시에는 우마차가 길거리에 온통 똥을 흘려놓고 다니던 시절이라 뭐 특이할 것도 없었지만
맨발로 빗길을 가던 제게는 경악 그 자체였지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한 손에는 대나무 손잡이의 파란 비닐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구멍난 젖은 운동화를 들고,
등에는 가방을 짊어지고
지렁이를 피해 겅중 겅중 뛰며
우거지상으로 질척거리는 골목길을 가는 1학년짜리의 모습을 말예요.
구멍난 젖은 운동화라도 그냥 신었으면 좋았을 것을
무슨 고집이었던지 그냥 그 골목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러고 갔답니다.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세상에서 제일 긴 골목길이었어요.
학교까지 어찌어찌 간 저는 그만 탈진해서 쓰러졌고 눈을 떴을 땐 우리집의 따뜻한 방이었지 뭡니까?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으시고 그냥 저를 포근히 안아주셨지요.
어찌된 건지는 말 안해도 아시겠지요?
어쨌든 그날 이후 저는 잃어버린 운동화의 조마조마한 비밀에서 풀려났구요.
어머니는 없는 돈에 다시 새 운동화를 사주셨답니다.
외할머님이 사주셨던 전의 그 예쁜 운동화같이 비싼 것이 아닌
잃어버려도 아주 쬐끔 속상할 정도의 싸구려로 말이죠.
오, 물론 발보다 더 큰 칫수의 운동화였겠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젖어서 냄새나던 운동화 한 짝은 말끔하게 단장하고
동생들이 탐내는 제 사물함이 되었지요.
예쁜 머리핀,
뽑기에서 획득한 작고 귀여운 플라스틱 구두,
방울이 달린 고무줄,
설날 받았던 복주머니등이 소중하게 터를 잡았었지요.
그 소중한 물건들이 언제 어떻게 제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비 오는 날 지렁이를 보면 그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바보같이 구멍난 운동화는 왜 끝까지 손에 들고 있었는지...^^
어려운 살림에 쇠약해진 몸으로 우리를 돌보시던 어머니와
또 쇠약한 딸을 도우려 손주들까지 도맡아야했던
어머니의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박봉에도 친척까지 챙기시던 호방하고 정많으신 아버님이 존경스럽습니다.
가정의 달을 숱하게 맞이하고 보냈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그 분들의 사랑이 진하게 가슴을 저미네요.
내리사랑이라고.
사촌들에게서 물려받은 옷과 신으로 지내는 내 귀여운 딸에게도
조만간 예쁜 신을 한 켤레 사줘야겠어요.
옛날 제 운동화 얘기를 들려주면서 말이죠. ^^*
여성시대 만드시는 모든 분들,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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