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싣고 간 간장게장 (딸도 자식이라구요.)

좋은 프로 항상 듣기만 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신동에 사는 사십줄의 주부입니다. 오늘 제 부모님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 부모님은 멸리 경기도 양평에서 두 분만 사십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쓰러지셔서 응급실을 찾으셔야 했다는 어머니... 당뇨 수치가 30 에서 600까지 오락가락 하신다는데... 혈압약을 드시지 않으시면 숨 쉬기도 힘드시다는 아버지... 조금만 흥분하셔도 온 몸이 가을날 잘 익은 고추빛으로 변하곤 하신다는데... 맏딸로 태어나 그 분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란 저는 그 사랑을 되돌려 드릴 겨를 없이 살아왔습니다. 결혼과 함께 그 분들에겐 가까이 할 수 없는 출가외인이 돼버렸고, 친정과 뒷간은 멀 수록 좋다시며 친정 근처에도 얼씬 못하게 하는 시댁 어른들께 밉보일까봐, 남편이 큰 소리 내며 집안 일이나 잘하라고 핀잔 줄까봐 이런 저런 이유로 명절은 물론, 생신때도 찾아뵙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시외전화요금을 시시비비 따지는 남편과 조용히 지내기 위해 전화조차 남편 눈치보며 가뭄에 콩 나듯 했더랬습니다. 어리석게도 그래도 그냥 아무 일 없으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아버지의 심상치 않은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 무슨 일인가 있다는 것을...! 멀다며 가기 싫어하는 남편에게 애걸복걸하여 4년여만에 찾은 친정. 내 어머니는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아 한 손에라도 쥘 수 있을 것같았습니다. 그 많던 머리숱은 어디로 가고 하얗게 눈 내린 어설프게 헤성한 머릿발... 당뇨로 고생하신 지 벌써 1년 반이나 되었지만 그처럼 심하시리라곤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남들처럼 섭생이나 잘 하면 되겠지... 당뇨는 부자 병이라는데 운동만 잘하시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왔는데...( 사실 그런 생각들은 남편이 심어준 것인데도 믿으려고 했답니다.) 그처럼 수십차례 응급실을 찾으시면서도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으신 건 그 분들만의 자식사랑표현이겠지요. '공연히 신경 쓸 것 없다...'는. 곁을 지키시는 아버지 역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퇴직 전의 그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간 데 없고, 작아지고, 초라해지고, 옹색해보이는데 정말 불쌍하게 변하셨더군요. 제가 늘상 부모님을 찾아뵈었더라면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4년여만에 뵌 모습은 저를 가슴으로 울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신 손으로 밥을 지으신다는 아버지... 직장을 놓기까지 한 번도 그래보지 않으셨는데 어머니를 위한 특별 식단까지 만드신다며 자랑하시는데 왜 그리 안스럽던지... 냉장고를 열어본 우리들 자식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분노하고, 시댁들의 횡포에 분개하고, 부모님의 현실을 안타까와해야 했습니다. 상해가는 달걀 몇 개와 얼린 묵은 김치 한 봉지와 말라 비틀어진 멸치 볶음과 짜디 짠 깻잎 장아찌가 아버지의 음식이었던 겁니다. 어머니를 위한 식이요법에 신경 쓰느라 아버지는 정말 되는대로 드시고 계셨던 겁니다. 제가 남자가 아님을 그 때처럼 한탄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시댁의 눈치를 볼 리도 없을 테구요. 자식이 많으면 뭘합니까? 죄다 남의 집에 가서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딸들인 것을... 어쩌다 들르는 딸이 가져다 둔 것들이 다음 누군가 들를 때까지 아버지의 식량이었던 것을... 그걸 아끼고 아끼면서 냉동실에 얼리고 장아찌가 소금이 되어 짜서 못 먹게 될 때까지 드시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4년이나 그 분들을 기다리게 한 못 된 불효녀는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당신들의 딸은 당연히 친정에 자주 들르길 바라시고, 혹시 연락 없으면 전화가 불이 나게 하시면서, 며느리에게는 출가외인 운운하며 친정을 멀리하라고 고집하시는 모든 시댁 어른들께 감히 반항하고 싶습니다. "며느리도 친정에선 딸이고, 딸도 자식이라구요!...라고. 얼마 전 간장게장을 샀습니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를 위해...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세웠지만, 실상 부모님의 여윈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서였습니다. 남편 몰래 한 단지를 더 사서 택배로 보내드렸지요. 그걸 받으신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더군요. "고맙다. 정말 고맙다. 아버지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신다. 당장 먹자고 하신다. 잘 먹으마." 라고. 정말 눈물나게 고마와하셨습니다. 세상에, 그게 몇 푼이나 된다고 이 분들을 그처럼 외면하고 살아왔던가 싶은게 발등을 찍고 싶을 지경이었습니다. 이제 남편과 시댁에 항거할 겁니다. 저만의 데모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효도라는 명분을 얻기 위함이 아닌 돈과 시간과 사랑을 투자하는 자식의 도리를 하기 위해 전처럼 순종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상의 모든 며느리들에게 감히 권하고 싶습니다. 늦기 전에 친정 부모님을 찾아보라고... 그리고 그 분들이 정말 잘, 자알 계신 건지 살펴보라고... 며느리가 되기 훨씬 전부터 날 때부터 친정이란 말을 알기 전부터 딸이었고, 자식이었음을 잊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더 사실지 모르지만 살아계실 동안 더 불쌍하게 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만이 내가 자식으로서 받은 사랑을 이제 그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돌려드릴 수 있는 길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저처럼 뒤늦은 후회를 하지 마시기를 며느리 된 사람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두서 없는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윤승희, 조형곤씨 두 분의 다정다감한 목소리를 빌려 제 글이 방송을 타고 친정에 무심한 모든 며느리들에게 각성하는 계기가 되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네요. 수고하세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동아한일 아파트 110동 1205호 TEL: 901-5688 (H.P. 016-9556-56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