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이 이별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할까?
눈물을 주렁주렁 맺히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이별앞에 속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건강했었는데, 그렇게 잘 살았었는데, 너무 아까운데,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었는데...라는 과거가 되기까지 속이며, 또 속아가면서 우리는 세상이란 울타리안에서 삶으로 발버둥치기 마련이다.
여든 세살이 넘으셨던 앞집 할머니. 하루가 멀다하고 밭일을 못 잊으셔서, 굳은 살로 단단한 시커먼 두손에 언제나 가득 담긴 나물이며, 야채들을 고맙게 받기만 했던 올케언니. 콩 한쪽이라도 나눠주지 못하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는지, 며칠전에 어디선가 선물로 들어왔다시며 고로쇠 물을 한 병 들고 오셔서는, 언니만 있는 줄 알고 오셨다가 시누인 내가 있는걸 알고, 둘이 똑같이 종이컵에 고로쇠물을 나눠주셨던 할머니.
언니 혼자서 식당일이 벅차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 다니는 걸 잘 아시는 할머니께서는, 하루도 잊지 않으시고 언니를 도와주셨다. 야채를 다듬어 주시고, 마늘이며 다른 필요한 음식 부재료들을 할머니께선 주저않으시고 시커먼 흙을 친구삼아 열심히 다듬어 주셨다. 손가락이 아픈데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셨다. 젊은 사람이 혼자 쩔쩔매는 모습이 맘 아프시다며 당신의 아픈 손가락을 하루도 쉬게 하지 않으셨던 할머니의 모습. 오래전부터 심장이 안좋으셨다는 말씀은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는데, 옆집 아주머니께 전화로 전해들은 할머니의 소식 하나.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데 위독하시다는 말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십년이었다. 할머니와의 잔잔한 정을, 구수한 정을 나눈지도 어느새 십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올케언니의 눈물은 어느새 할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듯 보였다. 우리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우리 할머니보다 더 정겹게 우리들을 아껴주셨고, 사랑해주셨던 할머니. 구부러진 허리로 하루종일 밭을 매고 그 밭에서 나는 여러가지 곡식과 야채들을 아낌없이 나눠주셨던 앞집 할머니. 살이 하나도 없이 가녀린 두 팔이, 뼈만 앙상한 두 다리, 눈에 힘이 없어 거의 눈을 감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병원에서 봐야만 했다.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올케언니는 망연자실했다. 그냥 소리없이, 흐느낌으로 할머니를 맞이했다. 흘러도 흘러도 마르지 않는 언니의 눈물. 말없이 할머니와의 예고없는 이별을 준비중인 듯 보였다. 일주일이라고 했던가? 병원에서 할머니의 생명을 일주일이라고 가족들에게 통보했다고 했다. 너무나 쉽게 지나가버릴 일주일이란 시간.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채 왜 왔냐고, 누군지도 모르시면서 뭐하러 왔느냐며 계속해서 손가락을 흔드셨다.
밭일을 못 잊어서, 얼른 병원에서 나가 흙에 손을 담그고 싶으신 할머니, 병원이 답답해서 집에 가고 싶다시는 할머니의 재촉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할머니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기나 하시려나...
할머니, 내일 오실거죠? 우리집에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내일은 꼭 출근도장 찍으실거죠?
언니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알았다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내일 가겠다고, 내일 가서 언니랑 함께 야채를 다듬겠다고 할머니는 기약없는 약속을 하고 계셨다. 심장 박동수치가 자꾸 낮아지는데, 할머니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신채 내일의 퇴원을 자신하셨다.
언니의 눈물이 이별을 나눌 때 할머니는 잠을 청하셨다.
내일 뜨는 태양뒤엔 꼭 앞집 할머니가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오시겠지.
두손 가득 고구마를 들고, 잔치떡을 들고 우리 올케언니를 찾아 들어 오시겠지. 할머니, 이겨내세요. 꼭 이겨내셔서 내일 뵙기로 해요. 네?
할머니를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 올케언니를 꼭 기억하세요, 할머니.
할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해야하는 시간이 멀어지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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