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5일이면 저희 부모님이 결혼하신지 꼭 32년이 되시는 날입니다.
저희 엄마는 부자집 무남독녀,
아빠는 말 그대로 고학생에 누이가 3명 여동생이 2명인 집안의 외동아들로 태어나셨데요
첫 직장에서 만난 두분은 아빠의 선의의 거짓말로 결혼에 골인하셨답니다.
저희 아빠는요 엄마께
'시집간 누나만 2명있다. 시골에 땅도 좀 있고 살만하다. 큰아들이긴 한데 큰집이 아니여서 제사는 않모셔도 된다'고 '거짓말'을 하신 후에야 결혼 허락을 받으셨데요
그런데 일이 터진건 바로 결혼식 당일날 이였다네요
저희 엄마는요
'세상에 그 없다던 시누이가 2명이나 나타난 것은 그렇다치고
아직 시집 않간 누나가 1명 더 나타나는데 어디서 그렇게 줄줄이 사람도 많냐!' 하시면서 지금도 그날의 '악몽'을 얘기하곤 하세요^^
그것보다 더한 일은 지금부터 시작 됩니다.
저희 아빠가 근사하게 신혼여행을 준비 했다며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던 그 '신혼여행'이 바로 문제의 시작 이였습니다.
예식을 마치고
택시를 불러서 공항 쪽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저희 아빠 왈
'터미널이요'하시더래요
'왠 터미널? 제주도 가는거 아니였어요?'
예쁜 새색시였던 울 엄마의 물음에 바로 표정이 바뀌시면서 저희 아빠가 하신 말씀은요
'내가 언제 제주도라고 했었나? 그냥 걱정말라고 했지! 가보면 알아'
그러시더래요
그래도 적어도 설악산은 가겠지 싶어 그냥 피곤함에 모르는척 했더니
저희 아빠가 끊으신 표는 바로 '00온천'이였답니다.
그래도 어쩌 겠습니까? 결혼은 이미 했으니
그저 가는 수 밖에는요
설마 첫날밤은 호텔에서 자겠지 싶었던 엄마의 바램은 여지 없이 무너졌데요
'00여관'으로 데리고 들어간 곳은 방이 상당이 크더랍니다.
'뭘 이렇게 큰방을 얻어요 그냥 작은 방으로 가요'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나타난 저희 아빠의 친구들!
세상에 아예 작정을 하고 오신 분들이 그숫자만 7명이셨데요
밤새 내내 이어지는 오락(일명 '고스톱') 때문에 엄마는 방 한구석에서 졸면서 그 역사적인 '첫날밤'을 보내셨다네요
다음날, 오늘을 가겠지 싶었던 아빠의 친구분들은 아빠와 함께
온천욕을 하시러 나가시고 저희 아빠는 미안한 말 한마디 없이
'좀 쉬고 있어 목욕도 좀 하고'그러고는 그냥 휭하니 나가 시더래요
이게 무슨 신혼 여행입니까
대학교 MT도 아니고 참내!
엄마는 그래서 당장 짐을 쌀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혼자 목욕도 하시고 맛난 밥도 사드시는데 그냥 그렇게 서러운 눈물만 나시더래요.
그래도 그후로 아빠가 했던 '선의의 거짓말'들은 들통이 나서
저희 엄마는 일년이면 제사만 8번을 지내야 하시고 시누이 3명을 결혼시키셔야 했지만요
어쨋든 미우니 고우니 해도 부부는 어쩔수가 없나봐요
저를 비롯한 저희 형제들이 줄줄이 태어났으니깐요^^
벌써 제나이가 31살이고보니
두분이 어디 오붓하게 온천이라도 갔다 오셨으면 싶은데요
그럴때마다 저희 엄마는요
'나는 혼자서 징하게 온천 해 본 적이 있어서 않갈란다 니네 아빠나 갔다오시라고 해라' 이러시면서 고개를 흔드신답니다.
저희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전해주시구요
두분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사시길 큰딸이 기도하고 있다고도 전해 주세요
^^익산시 신동 89-1번지 김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