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 안녕하세요?
봄이랍시고 새출발하는 신랑신부들이 주말마다 진을 치고 있어서 휴일마다 예식장에 가서 얼굴도장찍고나면 휴일이 얼렁뚱땅 넘어가 버리곤 했는데 드디어 지난 주말에는 결혼식이 한건도 없는 한적한 여유가 생겼답니다.
그래서 바쁜 회사업무로 지친 신랑과 개구장이 아들놈 뒤치닥거리하느라 입맛 까다로운 신랑 챙기느라 궁둥이 붙일새도 없이 동동거리느라 지친 저는 하루종일 방바닥에 엑스레이를 찍을 심사였답니다.
그러나 보일러 온도를 최고로 올려놓고 뜨끈뜨끈해진 방바닥에 누워 "어따! 시원하네"를 연발하며 피로를 풀겠다고 누워있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리 없는 17개월된 아이는 이불을 걷어내며 밖으로 나가자고 성화였답니다.
결국 아이의 등살에 어쩔수 없이 억지로 이불속에서 끌려나와서 무작정 신랑과 저는 길을 나섰답니다.
무작정 나선길이라 어딜가나 막막하던차에 간밤에 신랑이 좋아하는 친정엄마표 김장김치 김장독을 새로 헐었으니 김치도 퍼가고 밭에서 봄나물이랑 쑥도 넉넉하게 뜯어놓았으니 시간나면 들려가라는 엄마의 전화가 생각나 친정으로 향했답니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니 과연 봄은 봄이었습니다.
벌써 성급한 개나리는 노란 꽃봉오리를 터트렸고 가로수의 벚꽃은 손대면 톡하고 터질듯 꽃봉오리에 연분홍물이 올라있습니다.
겨울내 동면기에 들어가는 동물처럼 집안에서만 갇혀지냈던 탓인지 아이는 신이나서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덩달아 신이난 신랑은 휘파람을 휙힉 불어대고 저역시도 오랫만에 친정부모님을 뵐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답니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 친정집에 당도하니 대문밖까지 달려나오시며 반갑게 맞이하시는 친정부모님은 그새 세상에서 더 한걸음 멀어지신듯 했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아버지는 종종걸음치는 아이의 뒤를 흐뭇해하시며 쫓아다니시고 허리가 휘청하게 굽으신 엄마는 사위 점심상에 아껴둔 맛난 음식들을 꺼내 올리시는 손길이 분주하기만 하십니다.
엄마는 밥을 두그릇이나 비운 신랑에게 흐뭇하신듯 누룽지와 식혜까지 내오셨고 신랑은 새로운 음식이 나올때마다 즐거운 비명을 질러댑니다.
친정집의 봄은 결혼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마당을 빙 둘러싼 감나무에 초록빛 감잎이 돋아나고 있었고 뜰의 수선화는 청초하게 세상을 향해 꽃봉오리를 터트리고 있고 텃밭의 비닐 하우스에는 씨앗을 놓을 고구마새순들이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결혼전에는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큰방으로 들어가니 윗목에 있는 사진첩에 큰오빠 조카부터 시작해서 막내조카의 돐사진들이 나란히 끼워져있고 아랫목에는 부모님께서 영정사진으로 미리 찍어두신 사진이 사진첩에 끼워져 있습니다.
얼마전 영정사진을 미리 찍으셨다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었는데 사진첩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부모님을 뵈니 ㄴ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길 품안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있자니 소리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2년후면 팔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와 칠순을 바라보시는 엄마가 연세보다도 훨씬 더 연로하신것 같아서..... 그것이 다 내탓인것만 같아서..... 내곁에 함께할수 있는 시간들이 얼마남지 않은것 같아서....서러웠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듯이 트렁크 가득 김치랑 깨랑 콩이랑 고구마랑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을 퍼왔답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말로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가슴 밑바닥의 사랑을 듬뿍듬뿍 퍼담아 주신것 같아 감사히 담아왔습니다.
자식 낳고 자식 키워봐야 부모님 사랑 깨닫는다고 저도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서른을 넘겨서야 자식 낳고 키워보니 이제야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조금 알것같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의 100분의 1만 부모님께 되갚아 드려도 효녀라고 칭찬 받을텐데.....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내일은 기관지가 안좋으셔서 50년도 넘게 피워오시던 담배를 끊으셨다는 친정아버지가 담배대신 드신다는 은단이랑 친정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설책이랑 엄마의 봄스웨터 한벌 사서 소포로 보내드려야 겠습니다.
두분도 봄속에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