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날아가는길, 개나리 봇짐맨 나그네가 따라 나선다.

봄이다. 봄이 오고 있다. 그렇게 아랫도리를 휘감던 살을 애는 찬바람도 슬금슬금 훈풍으로 바뀌어 목결을 감아온다' 두툼한 코트를 벗어 던진 홍안의 소녀는 연분홍 스카프를 두르고 한껏 멋을 내었다. 봄이 온 것이다. 지리산에도 봄이 온다, 백두대간이 한반도에서 마지막 용트림을 한 지리산에 봄이 오고 있다. 골짜기마다 칙칙하고 빽빽이 들어차 있는 떡갈나무 잎에도 덕지덕지 붙은 소나무 믿뚱의 지지깝데기 안에서도 골짜기에 늘어져 있는 버들강아지 마디에서도 푸른 생기가 돌고 있다. 겨우내 한아름 거머쥐고 있던 물또아리는 따스한 온기에 매듭을 풀어 땅을 적셔내고 재잘거리는 시냇물소리는 둥지를 찾는 멥새의 사랑의 흥을 돋운다. 이제 또한 해의 처절한 삶에 애증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침부터 날씨는 우중충했지만 그래도 봄바람이 불고 있다 .아이들과 지리산으로 나선 나는 정령치를 넘어 노고단으로 향했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 꿈틀거리는 지리산에 그윽한 봄의 향기는 우리 가족을 새로운 희망의 품으로 안아주고 있었다. 올망졸망한 아이들 손을 잡고 노고단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구름이 지리산을 휘감기 시작한 것이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싸라기눈으로 변하였다. 한참을 어지럽게 쏟아지더니 아예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따스한 봄기운을 북풍이 재촉하는 봄바람에 시샘을 한 것일까. 순식간에 지리산 노고단은 하얀 눈 천지가 되었다. 이제 막 솟아 오르려던 새싹은 움츠려 숨어 버리고 훈풍은 남쪽으로 돌아가 버렀다.갈참나무 가지에는 소복하게 쌓인 눈꽃으로 신천지를 만든다.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아한다. 한 움쿰 잡아 쥔 눈덩이로 아내를 향해 던지자 금방 눈사태가 난다. 우리가족은 한바탕 눈 속에서 아이와 어른 가릴 것 없이 깔깔 거리며 의기투합 눈싸움을 하였다. 그리고 노고단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정상에 섰다. 검은 구름은 언제 그랬냐 싶게 걷히고 파란하늘이 남해 바다 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햇살이 반짝인다. 눈 덮힌 골짜기에 내려 않은 봄내음은 눈부신 학의 몸짓인양 산사의 종소리처럼 퍼져간다. 한껏 겨울의 어둠을 걷어낸 허공에 청명함은 멀리 천왕봉 의 자태를 잡힐 듯이 걷어들이고 구레를 휘감고 도는 섬진강 물결 위에 겨우내 움추렷던 은어가 제 세상인양 은빛날개를 번쩍이며 뛰어 오른다. 기러기 날아간 뒤로 개나리 봇짐엔 나그네 발길이 가벼워진다. 봄은 이미 지리산을 넘고 있었다. 전주시덕진구 송천1동 주공아파트 126동 1001 호 902-2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