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에 들어오시면 제일 먼저 손님맞이를 하는 터줏대감님이 바로 유모차입니다.
지금부터 저희집 유모차 역사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가 첫아기 출산을 앞두고 저의 바로 위 형님께 유모차 물려 줄 것이 없는지 물었을때 형님은 조금 망설이며 대형 유모차 한대를 꺼내 주셨어요.
`나는 별로 안 썼으니 아직 괜찮을꺼야.`란 말과 함께..
얼핏 보기에도 덩치도 크고 고급스러 뵈는 것이 15만원을 족히 줘야 살 수 있는 물건이었어요.
`고맙습니다, 정말 잘 쓰겠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거 있죠?
집에 갖고 와서 커버 벗겨 빨고, 칫솔로 구석구석 먼지까지 씻어내니 한결 개운해 졌습니다.
보면 볼 수록 공짜로 얻기에는 너무 잘생긴 유모차였어요.
그런데 이 유모차를 동네 아줌마들은 `땡크`라 불렀지요.
제가 유모차를 밀며 공원에 나타나면 100m전방부터 땅이 울린다나요?
어쨌든 요란한 바퀴소리와 더불어 큰 머슴아, 작은 머슴아 둘을 키우고 이제는 소핑수레로 쓰고있는, 이 유모차는 저의 출산 후 4년을 함께 해온 동반자가 되었어요.
글쎄, 남편 손목보다 유모차 손잡이를 더 자주 잡았다면 말 다 한거죠.뭐
그러던 어느날 서울 큰 형님이 저희 집에 오실일이 있었어요.
연관에 놓여있는 유모차를 보시더니 ` 어머 ! 이게 아직도 있네.`라며 반가워하시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그 유모차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큰 조카 백일때 부터 쓰던 것인데 그동안에 서울 조카 2명, 성남 조카 2명, 그리고 제가 얻어온 전주 형님네 조카 2명, 마지막으로 저희 집 아이들 2명까지 총 8명의 아이를 키워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모차 였던 거예요.
상상이나 되세요?
자동차도 10년 타기 힘든데 하물며 유모차를 20년간 탔다는 것이...
아이 한 명당 1년은 족히 타야 하는게 유모차이잖아요.
그러면 창고에 있었던 기간을 뻬고라도 8명의 아이를 태우면서 8년간을 맹 활약 했던 유모차가 바로 제 눈 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거있죠?
어째, 생 때쓰던 아이도 이 유모차에만 태우면 잘 잔다 했더니, 그게 다 형님들 손 맛이 베여 있어서 그랬구나!
사실 제 위로 3형님은 다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어쩜 저를 만나기 전까진 이 유모차의 진가가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유모차를 밀때는 전처럼 땡크 몰듯이 마구잡이로 하지 않고 어디가 부서질까 ,조심조심 운전한답니다.
혹시 알아요?
나중에 골동품이 될런지...
라디오를 빌어서 유모차 동창생들에게 축하 사연을 보낼까해요.
유모차 1기 김미규! 입학 축하한다.
이 조카는 일러스트레이트 작가가 될꺼래요.
유모차 2기 김미진! 쌍꺼풀 수술 잘 된거 축하한다.
이 조카는 엄마처럼 간호사가 될꺼래요.
유모차 3기 김재윤! 키 많이 커라.
이 조카는 중학생인데도 벌써 저만큼 키가 컸데요.
유모차 4기 김태환! 운동 열심히 해라.
이 조카는 덩치가 산 만해요.
유모차 5기 오태연! 애들이랑 잘 놀아 줘서 고맙다.
이 조카는어린 동생들과 잘 놀아요.
유모차 6기 오주연! 생일 축하한다.
이 조카는 3월 1일이 생일인데 유치원에서 3월 14일날 잔치해 준데요.
유모차 7기 김태성! 동생이랑 사이좋게 놀아라.
우리 아들인데요, 얘는 3월 28일이 생일이예요.
유모차 8기 김태희!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다녀라.
우리 막내아들인데요. 이마에 혹 떨어질 날이 없답니다.
그리고 모두모두 건강하게 키워준 유모차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