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방문을 열어봅니다.
밤이 깊어 세상도 잠든 것 같이 고요하기만 합니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엄마의 작은 어깨가
규칙적으로 들썩이고 있었습니다. 잠이 드셨던 게지요.
엄마의 어깨가 저리 작았던가 하는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베개 위에 조심스럽게 놓여진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엄마의 머리를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저의 대학 졸업식이었습니다.
졸업식을 마친 뒤 작은 중국집 안에서 어머니는 자장면 한 그릇을 앞에 두시고 어린아이처럼 울기만 하셨습니다.
IMF로 인한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함께 시작한 저의 서울 생활은 철모르고 부모님 슬하에서 발랄하게 지내던 저의 모습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제가 선택했던 서울 생활이었기에 용돈 정도는 벌어써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응석받이에 막내둥이 짓만 하던 저는 난생 처음 돈을 번다는 것이 얼마나 쓰라린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죠. 그렇지만 철모르는 어린 딸 그대로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었던 걸까요?
해외 어학 연수다 학원이다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던 친구들을 바라보면서 애꿎게도 부모님을 원망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만 갔습니다.
"엄마, 다른 애들은 어학연수도 갔다오고 예쁜 옷도 사 입고 그렇잖아. 나 시골에서 왔다고 광고하라는 거야? 나처럼 학원도 안 다니고 멋도 안 내는 사람 아무도 없단 말이야!"
그럴 때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부모 잘 못 만난 탓에 이렇게 우리 딸이 고생하는구나 라는 엄마의 눈물 진 목소리가 전화기 저 너머에서 들려왔습니다. 힘들게 식당 일로 버신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와 오빠에게 주셨던 엄마는 뭐가 그렇게 미안하고 안타까우셨을까요?
그렇게 벌써 5년이 흘렀습니다.
예전에는 졸업식 마치고 나서 늘 자장면을 먹었다고 하시면서 엄마는 저를 데리고 작은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셨습니다.
자장면을 먹고 있는데 제 얼굴을 한참 바라보시던 엄마는
"우리 딸 고생해서 졸업하는 것만 봐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시집가면 어떡하지? 엄마는 너 시집가는 모습 보면 너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쳐다보지도 못할 것 같다. 이렇게 예쁜 딸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하고 시집 보낼 것 같아서.. 그게 평생 한이 될 것 같다. 미안하다." 하셨습니다.
졸업식 하는 딸 옷 한 벌 해주셔야 한다며 제 옷은 없는 돈 탈탈 털어 가며 장만해주시고 자신은 낡은 구두에 천이 다 삭아 가는 코트, 오래된 가방이 편하다 하셨던 엄마는 또 다시 바보 같은, 이 철없는 딸에게 미안하단 말만 하시고 계셨습니다.
졸업식이라고 한껏 멋을 내고 앉아 있었던 저는 엄마의 눈물 진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어
"에이.. 밥 먹는데 짜증나게 왜 그래? 창피해 죽겠다.. 얼른 밥이나 먹어요" 하고
자장면 그릇에 얼굴을 파묻을 것처럼 가까이 댄 채로 고개 한 번 안 들고 열심히 먹기만 했습니다. 어느새 주름져버린 그 고왔던 얼굴을 보면 저도 바보처럼 엉엉 울 것 같았으니까요.
대학 시절의 마지막 밤입니다.
낮에 차마 바라보지 못했던 나의 소중한 엄마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습니다. 깊게 잠든 엄마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져봅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입니다. 흘러온 시간들이 안타깝고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잠들었을 때 엄마도 저 모르게 저를 따뜻한 손길로 쓰다듬곤 하셨을 테지요.
'예반'이라는 작가는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누군가에게 그 무엇이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이제 저도 인생의 힘든 길에 첫 걸음을 내밀게 됩니다. 저 역시 앞으로의 인생에서 모든 사람에게 그 무언가가 되기 보다 엄마의 중요한 그 누군가가 되어 삶을 함께 나누는 딸이자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께서 나를 낳아주신 것이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