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할말은 있습니다.

자랑도 아닌얘기를 자랑스럽게(?)한다는 것이 우습지만 그래도 변명아닌 변명차원에서 한마디 하렵니다. 왜냐면 제가 아직 운전을 못하는데 그것은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롱면허 이미 5년이 넘었을때 제가 운전을 해야겠다고 하면 남편은 늘 최기사가 옆에 있는데 뭐하러 운전을 할려고 그러냐고 어디든 데려다 준다고 허풍을 떱니다. 하지만 남편에게 어디 좀 태워다 달라고 하면 결코 좋은 소리 안 나옵니다. 거기는 그냥 택시 타고 가는 게 더 싸겠다. 기름값이 얼마나 먹히는 줄 아느냐. 그런말을 들을 때 제가 얼마나 고깝고 속이 상했겠습니까? 이래선 안되겠다. 더 나이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기전에 운전을 마스터 하자 굳게 맘 먹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도로주행연수를 받으려고 학원에 등록을 하려는데 돈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어쩝니까. 비싸더라도 이왕 맘먹은 것, 배울 건 배워야지... 도로연수 한다니까 제 친구 하는말이 그런때는 강사한테 사례비도 따로 주고 담배도 사주고 음료수도 사줘야 신경질 안부리고 잘 가르친다고 하더군요. 강습 첫날에 먼저 수인사를 하고 나서 강사가 저한테 그러데요. 호칭은 그냥 미숙씨로 하겠습니다. 이름이 미숙인데 제가 뭐라겠습니까? 그러라고 했지요. 저처럼 조신한 여자가 모르는 남자와 차안에 단둘이 있다는게 좀 겸연쩍은 일이긴 하더군요. 그러나 그 강사, 저 보다 한참 어린 30대 초반이었고 , 여드름 분화구가 숭숭한 검고 둥그런 얼굴에, 키도 땅딸하고, 머리엔 무쓰를 잔뜩 발라서 빳빳한 잔디머리를 하고 있었기에 맹세코 제 취향이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더운 여름날이었고 에어컨도 안되는 연수용 승용차를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을 가는데 강사가 잠깐 쉬었다 가자고 그러더군요. 비싼 강사료를 생각하면 저는 땀으로 멱을 감는 한이 있어도 잠시도 쉴 수가 없죠. 한데 어쩝니까. 강사님이 쉬 자는데 쉬어야지... 목이 말라서인가? 음료수라도 하나 사드릴까요? 했더니 괜찮다고 하데요. 싫다면 그냥 말어? 아직도 며칠이나 연수를 더 받아야 하는데...제 머리 속이 어지럽더군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저는 그날 연수를 끝내며 더운데 음료수라도 사서 드세요 하고 2만원을 내밀었습니다. 다음날이었습니다. 연수를 시작하는데 그 강사, 느닷없이 그러데요. 나이도 저보다 많고 그러니 앞으로는 누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참나! 어제는 나이 불문하고 이름을 부르겠다더니..그러면서 누님, 누님 하는데 괜시리 느끼하고 귀가 간지럽더군요. 또 전날과 다르게 레바를 잡은 제 손을 땀띠 날 정도로 잡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열심히 가르치더군요. 어찌어찌 5일의 연수기간도 끝나가고 마지막날 저는 조금 돈이 아깝지만 담배를 사 주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치사를 했죠. 그랬더니 이 강사님, 명함을 한 장 내밀면서, " 사모님! 앞으로 혼자 어디 가실 일 있을 때 자신이 없으면 저에게 연락하면 언제든지 기꺼이 동행 해 드리겠습니다." 이러는 겁니다. 뇌물의 영향임이 자명하지만 첫날의 미숙씨는 어디가고 다음날엔 누님으로 마지막에는 사모님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 땀을 뻘뻘 흘리며 적지 않은 돈을 들이고 거기다가 남편 모르게 뇌물도 상납하면서 도로연수를 마쳤습니다. 남편을 옆에 태우고 여기저기 운전을 하고 다녔죠. 또 친구가 그러대요. 누군가를 옆에 태우고 운전하다보면 옆에 아기라도 있어야 맘이 놓이지 혼자는 운전을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독립을 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디 좀 다녀오게 차 좀 달라고 했죠. 뭐하러 갈려고 그러느냐, 어디를 가느냐, 왜 가느냐고 꼬치꼬치 묻고 마지 못해 키를 넘겨주며 금방 사고라도 칠까봐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편을 뒤로 하고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동생네 집을 향하였습니다. 걷는 것과는 달리 차를 타면 모든 것이 빨리 스쳐가는 것이 왠지 불안했지만 애써 불안감을 누르며 동생네 집에서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4차선 대로를 건너려는데 제 앞에서 신호가 바뀌었고, 맨 앞에서 기다리다가 다음 신호를 받아서 출발할 때였습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동시에 엑셀을 밟은 발에 막 힘을 실을 때, 저만치 신호등 밑에서 이미 신호가 바뀐 줄을 모르고 조그만 남자애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차는 이미 가속을 하려는 중이었고 저는 있는 힘껏 브레이크를 밟앗습니다 그러나 차가 브레이크 밟는다고 바로 섭니까? 어..어...어..하면서 아이와 차와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 지는데 눈을 번히 뜨고도 마구 달려오는 아이를 막을 도리는 없고 짧은 순간에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타더군요. 가까스로 차가 멈췄고 아이는 넘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앞이 깜깜 하더군요. 하늘로 솟든지 땅으로 꺼졌으면 했습니다. 그 잠깐동안에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르고 뺑소니 운전자의 마음을 이해 할 것 같았습니다. 넋이 나간 저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고, 도저히 운전을 할 수없어 마침 근방을 지나가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급히 아이를 싣고 그 아이어머니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검진을 받았더니 괜찮다고 그러데요. 그래서 저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행이다. 그리고 남편 몰래 해결할 수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생각하고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고 택시 타고 가시라며 만원을 주어서 보냈습니다. 제가 뭘 몰랐습니다. 집에 온 저는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녁을 준비했고 남편이 식사를 할때까지는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따르릉 전화가 울렸습니다. 지은 죄가 있는지라 가슴이 떨리더군요. 그러나 전화를 안 받을 수가 있어야지요. 여...여보세요...? 역시나... 아이의 삼촌이라는 사람이 아이가 혹시 후유증이 생길지 몰라 더 검사를 해 봐야 겠으니 지금 어느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호출하는데 어찌 안 갈 수가 있겠습니까? 눈치를 챈 남편에게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었고 같이 병원으로 갔더니 이미 아이를 눕혀놓고 세워놓고, 엎어놓고 뒤집어 놓고, 머리, 어깨, 팔 ,다리에 엑스레이를 십 여장이나 찍어 놓았더군요. 다행히도 별 다른 이상은 없었고 의사 선생님이 물리치료만 받으면 되겠다고 그러는데 휴우 ..다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아이 삼촌이 지금 아이엄마가 직장에 다니는데 아이를 데리고 병원 다닐려면 돈도 들고 하게 생겼으니 좀 생각 해 달라고 그러더군요. 뭘 생각 하라는지 모르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남편은 자기친구에게 조언을 받아 20만원이면 되겠느냐고 제시를 햇습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도 한참을 상의하더니 오만원만 더 쓰시면 안되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25만원에 합의를 하였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에게 구박 좀 받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남편이 그러데요. 오늘 비싼 술한잔 마신 셈치자고... 결국 저는 비싼 연수비에, 내키지 않는 뇌물까지 쓰고 거기다가 수업료 또한 만만치 않게 치르고도 지금도 운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어쩐지 몰라도 제가 후유증이 컸습니다. 만약 저의 순간 실수로 한 아이의 생명을 앗는 사건이 생긴다면 , 그 가족에게 씼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고 저도 평생동안 가슴에 앙금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못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석유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애국하는 심정으로, 또 여러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운전을 안하고 있답니다. 아니 못하고 있답니다. 비록 운전 못하는 사람은 문맹취급당할지라도... 이만하면 제가 운전 못하는 이유 아니 안하는 이유가 충분하지 안습니까? 그렇지만 걱정은 아주 조금 되네요. 이러다가 영영 운전을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구요. 011-9642-7000 차미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