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우의 겨울나기

땅속은 컴컴하긴 했지만 항상 온도가 일정해서 지내기 참 좋았습니다 그날오후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수를 청하고 있을 무렵 저 무우를 덮고 있는 볏집 위로 살포시 내리는게 있어 보았더니 하얀 눈이 오는 모양입니다 오수를 실컷 즐기고 나서도, 그날 저녁에도,또 그 다음 날에도 눈은 그렇게 내리고, 주위를 감싸고 있던 땅이 얼어 왔습니다 저는 볏집과 언땅을 헤치고 들어온 주인의 손에 이끌려 큰 냄비속 출렁이는 물속으로 넣어져 따스한 가스불에 푹 익어가고, 제몸을 다바쳐 국물맛의 가장 밑받침이 되어주고 있는 멸치, 늘어질대로 늘어져도 푸르름만은 지키며 냄비청청 하고 있는 대파, 거기에 마치 제 혼자 배부른양 긴 풍선마냥 부풀어오른 어묵, 소금,후추,기타등등을 만나 그렇게 끓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나 여자의 손에 들려진 분홍색 국자가 냄비에 들어오더니 휘 휘 저어지고 국물과 어묵 한개가 들려 나갔습니다 이어 "와! 맛있다, 정말 시원하다" 그런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남자의 손에 들린 그 분홍색 국자가 다시 들어오더니 좀 전 보다 더 많은 양의 국물과 어묵 두개가 "후루룩"소리에 삼켜지고 "와, 역시! 부장님,사장님 드세요. 속 푸세요 와! 좋네요" 이제는 누군의 손인지 모르게 연신 국자와 수저가 냄비 속에서 춤을 추고 어묵과 파는 다 들려 나가고 이젠 남은건 바스러진 멸치와 저 무우,그리고 다시금 부어진 냉수만이 냄비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시 가스불은 세어지고 그렇게 고요함이 찿아왔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밖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얘기를 간추려보니 아마도 여기는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그러니까 제조업체인듯하네요 사람들은 한5-6명이고 모두들 추운 날씨를 이겨보고자 나와 어묵, 파,멸치들을 불러 모았나 봅니다 기계소리.에어소리,드릴소리도 들리고 무엇보다 자주 들리는건 사람들의 정겨운 웃음 소리네요 얼마가 지나 아까 그남자인듯한 손에 들려진 그분홍색 국자가 또 들어와 저를 이리 저리로 밀치더니 "에구 어묵이 하나도 안남았네" 하면서 국물을 연거푸 세번을 떠가네요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제 몸 우려 낸 국물을 맛있게 먹는것을 보니 저는 기쁘기만 합니다 멸치도 제몸 바스러지게 맛을 내었다고 알려 주라고 부탁하네요 아무쪼록 이 회사 2003년에는 많이 많이 발전하고 번창하기를 바라며 저 무우는 이만 제 소임을 다하고 물러 나렵니다 여러분 우리 신토불이 무우 많이 많이 드셔 주세요!! 전북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 647-1 "서원세라믹" 225-3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