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외근을 나가려는데 커플처럼 보이는 연인이 보였습니다. 여자는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어 남자는 그 보조를 맞추느라 아주 천천히 마치 '걱정하지마요. 내가 곁에 있을테니...씩씩하게 걸어요'라는 걸음처럼 보였습니다. 남자의 걸음이 유난히 눈에 부셔서 전 한참동안 바라봐야 했습니다. 여자가 뭐라 하더니 남자가 여자의 운동화 끈을 쪼그리고 앉아 묶어주고 있더군요. 두 연인들의 모습이란 참으로 이쁜 열기를 만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음이 금새 훈훈해 지는데 또 제 맘을 살포시 감싸준 모습이 그려지더군요.
퇴근길 버스 안이었습니다. '만원 버스'가 늘 그렇듯, 썩 기분 좋은 일이 없는 게 현실인데... 내가 서있는 근처에서 작은 말소리가 유난히 귀에 들어왔습니다.
젊은 아줌마가 5살 되 보이는 아들아이가 넘어질까 안쪽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아주 작은 갓난아이가 등에 업혀 있는데, 나이 지긋한 할머님이 올라타자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자꾸 할머니를 끌어 당겨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얹뜻봐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탄 애기 엄마에게 자리양보가 썩 어렵기 마련인데 말이죠.
할머닌 두 아이를 보고 선뜻 앉기를 거부하시지만 결국 할머님이 앉고 무릎에 손자뻘 되는 사내아이를 무릎에 앉히셨습니다.
"고마우이"
할머니의 한마디에 전 눈물이 나올 뻔했습니다. 보기 드문 모습이었습니다.
아! 소위 사람과 함께 사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뻤습니다.
버스안 풍경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일터, 구두 수선집이 생각나 조금 돌아가기로 하고 그쪽 골목으로 갔습니다. 남동생 녀석이 먼저 저녁을 가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보온병에서 김이 도는 따순물을 후후 불어 아버지께 드리는 모습을 보니 녀석...많이 컸습니다. 참 대견스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서로 돕고 사는, 그래서 너무도 따뜻한 모습이 많은 그런 모습...
그런 모습만 가득한 2003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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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영등동 청아 아파트 해당화동 3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