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빠에게..

우리곁을 떠난지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렸습니다 그때, 그날 지금도 생생합니다 전 임신8개월 집에서 혼자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니 영동병원으로 오라고... 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남편에게 전화로 빨리오라고 만 해습니다 아마 거짓말이거나 꿈일지 모른다 생각 했습니다.. 지금쯤은 아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여느때 처럼 있을꺼야 그리고 집에가면 항상 그랬듯이 우리 민애 왔니?하실꺼야 병원에 가는 동안에 난 주문아닌 주문을 외웠습니다 병원앞에 동생도 소식을 들었는지 달려왔습니다 동생과 병원에 들어 갔을때 아빠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거짓이였어.. 안도의 한숨이 가시지도 않은채 혹시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한분 할아버지 않오셨습니까?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아~~ 그분!! 하시며 오시자 마자 돌아가셔서 짐으로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말과 함께 깜깜한 어둠속에서 그저 눈물만이 흐렀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장례식 분위기 였습니다 그때부턴 전 엠불란스 소리는 무작정 싫어 합니다 앰불란서 소리가 그때를 기억 나게 합니다 전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말 못했는데.. 기억합니다 저희 집은 토끼와 발맞추고 사는 동네입니다 종점에서 30분이 걸립니다 중학교때의 야간학습이 끝나고 혼자는 집에도 못 갔습니다 마지막 수퍼에서 전화로 여긴 마지막 수퍼인데요 마중좀.. 하고 끊고는 열심히 걷습니다..그런데 아빤 보이지 않고 원망이 될려구 하면 조용히 가방줘라 하시던 아빠. 눈을 들때 아빠의 헉헉 큰소리의 숨소리와 이마에 벌써 맺힌 땀방울... 힘드냐고 묻는 딸에게 전혀 힘들지 않다던 아빠.. 그땐 제가 무서울까봐 달려왔을 아빠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빤 갈치를 먹을 땐 우리가 컸을때도 가시까지 발라주시던 아빠. 그땐 당연한줄 알았습니다 그시절 아빠는 무서운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 아빠가 돌아가셔도 추억은 별로 없을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흐른뒤 지금은 너무 많아서 쓸수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걸면 술을 많이 드셔도 6남매의 양말에 주섬주섬동전을 꺼내서 하나하나에 넣던 아빠 회사에서의 간식인 닭죽을 집에 토끼같은 6명의 자식들 생각해서 드시지 않고 가져 오시던 아빠 지금 가슴이 아련해지는 추억 들입니다 신랑과 인사하러 갈때 .. 우리 민애 고생 많이 했네 이제 자네가 우리 민애 많이 사랑해 주게 부탁이네 하시며 우시던 아빠 걱정마세요 난 지금 두아이의 엄마로 행복합니다 아빠 이제서야 말합니다 아빠 사랑해요 요즘 엄마 몸이 안 좋은데 아빠가 도와 주세요 낼모래가 아빠 기일인데 참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