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관님의 시집 [나 항상 그대 곁에 서...] 읽다가
맘에 드는 시 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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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사랑할까요
차라리 그댈 사랑해 버릴까요
이렇게 애태우면서
이렇게 아닌 척 할 바엔
차라리 부서지도록
방울방울 거품 되어 무너지도록
흩날리어 그대를 맴돌더라도
좋아해 버릴까요
그대를
이렇게
아파할 바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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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우선은 생각이 나는 거죠
자주
이따금이 아니라 종종
가끔은 계속
그리곤 보고 싶은 거죠
매일
문득이 아니라 틈틈이
가끔은 금새
이젠 편지를 쓰는 거죠
또박또박
대충이 아니라 공들여
가끔은 열에 들떠 미친 듯이
결국엔 구슬을 만드는 거죠
방울방울
엉엉이 아니라 주르륵
가끔은 줄줄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코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게 아니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렇죠
그리워하는 가슴에 진실을 심는 거죠
믿음이 사랑을 틔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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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합니다
가끔 먼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어도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비가 오는 창가에 서서 쓸쓸히 커피를 마셔도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슬프지 않은 영화를 보고 당신이 슬픈 얼굴을 해도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어떤 음악이 나오면 조용히 눈을 감는 당신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애처로운 노래를 부른 뒤 무너지듯 내려앉는 당신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옛 사진들 보며 물끄니 누군가를 찾는 그대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아름답게 첫눈이 오시는데..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가슴아픈 시간도 당신의 세월이기에
이해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이해합니다
믿으니까요
오늘이 세월로 흐르면
내가 드린 이 차 한 잔이
그대의 향기가 될 것을
믿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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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나요
가슴을 붙잡고 그토록 우시나요
애절한 눈물
아무리 그리 슬퍼하셔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맑은 새소리
창을 열면 환한 햇살
고운 꽃향기 바람에 실려오고
사랑하는 이와 즐거이 뛰놀아도
서산으로 기우는 붉은 해
노을이 우릴 붉게 감싸면
아쉬워도 안타까워도 어찌 할 수 없습니다
머나먼 저 곳 붉은 저 곳으로
그토록 겨운 님 마냥 걸어가고 있어도
눈물이 가슴을 적시고 목이 메어와도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해가 지면 님은 사라지고, 홀로 남은 내겐 어둠뿐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님의 외로워하는 목소리가 발을 잡고 몸을 잡아 어둠에 묻히라 하여도
그건 악귀들의 속삭임
구슬피 우는 밤새 소리 들리지 않으시나요
저 소리는 어서 돌아가라 애타하는 님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눈물을 닦으세요
언젠가 저 놀빛에 물들어 서산을 넘어갈 때
그때 마중 나올 님을 위해
오늘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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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말없이 서로 외면하고 있는
두 사람
밝은 햇살이 부신 듯
고개 숙인 둘 사이엔
푸른 잎사귀
하얀 꽃 한 송이 소곳하고
찻잔엔 안개 같은 마음이
피어오르네
어젯밤 어둔 밤
그 어두움 그늘이 되어
두 사람
아침이 왔는데
눈을 뜨지 않네
어젯밤 별빛 같은 서글픔만
고개 숙여 더 수그려..
주위엔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
발소리 찻잔소리 나드는 소리
울지 말아요..
꽃잎에 맺힌 이슬방울이
울지 말아요..
아침 햇살에 빛나네
- 고달픈 연인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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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전해 하지 말아요
삶이란 원래 그렇잖아요
만나고 친해지고 정들고 즐거웁다가
한 해, 한 해
시간이 가면서 세월이 가면서
눈길은 아득해지고 추억은 아스라해지고..
느낌도 감정도 차즘 변해 가는 거죠
슬퍼하지 말아요
인생이란 원래 그렇잖아요
반갑지만 왠지 어색하고
즐겁지만 왠지 예전 같지 않고..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쌓인 눈길이 다른 곳을 향해 있으니까요
그렇잖아요
영원한 건 없는 거죠
그냥 웃어요
웃으며 만나고 꾹 쥐어본 손아귀로
예전 느낌 한번 뭉클해 보고요
서글픈 느낌 차 한 잔 하며
스쳐가듯 부여안듯 얘기 나눠요
좋아했으니까..
아, 반디같이 빛나는 나의 사랑 나의 우정..
잡을 순 없지만 바라만 봐도 흐뭇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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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앞에 서서
한 송이 장미를 두 손으로 주고 싶다
향기 좋은 이별은 눈물이 나고
느낌 좋은 우정은 가슴이 아파
나는 장미의 붉은 빛을 두근거리듯 안고
네 앞에 서서 놀라는 너를 마주보며
소중히 나의 장미를 너에게 주고 싶다
떨리는..
그러나 용감한 나의 꽃을 두 손으로
너에게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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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내음이 난다고 했다
그 아이는
별빛을 보다가 별내음을 맡았다
어떤 내음인데?
묻는 내 말에
그 아이는 달처럼 환한 얼굴로
별같은 눈웃음으로 말없이 빛났다
하늘에서 그 아이 내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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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나 불러보아도
언제나
메아리만 같아요
내 사랑
나 기다리는데
돌아오는
내 기다림뿐이죠
함께 살아온
이 하늘 아래
함께 올라온
이 세상 위에
눈물은 낙엽이 되고
눈물은 눈꽃이 되고
눈물은 꽃잎이 되어
돌아와
내게 돌아와
다시 이렇게 날리는데
돌아올
언젠가 돌아올
그 사람은
오늘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메아리만 같네요
내 아픔
내 그리움
언제쯤 닿을까
언제쯤 내 목소리 듣고
내 눈물 손을 잡고
하루를 돌아
이틀을 돌아
내 시간을 돌아
그 길을 밟고
뜨거운 눈물에 젖어
내 앞에
다시 내게로
돌아 오실까
내 사랑
난 기다릴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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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꿈 이야기 하나 할까
어제 꿈을 꾸었어
사람들이 많은 저수지
난 둑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봤어
물 위에는 행복한 놀이동산
오색 빛깔 놀이 기구를 타고 날고 돌고 떨어지고
신나는 저수지를 난 시무룩히 보고만 있었어
그때
니가 뛰어와
어린 아이 니가 멀리서 뛰어와
저수지로
난 놀라 달렸어
넌 물에 빠지지도 않고 유원지를 뛰어다니는데
난 두려움에 무서움에 소름이 끼치도록
너를 향해 달려갔어
별안간 세상이 떠올라
물 속으로..
머리 위로 아름다운 무지개 빛 어룽이는데
난 숨을 쉴 수가 없어
그때, 물 속으로 푹 빠지는 너의 왼발
손을 뻗어 잡았어
빨간 아이 구두가 벗겨지고
세상은 눈부시게 화안히 밝아져..
고개를 드니
조그만 웅덩이에 내가 있어
주위에 친구들이 둘러 있고
빨간 구두가 벗겨진 니가
뒷짐을 진 채
화가 난 얼굴로 날 내려다보고 있어
내 손에 들린 너의 빠알간 아이 구두
왜 그걸 니가 가지고 있어?
차가운 너의 물음에 난 고개를 떨궜어
눈물이 나왔어
눈물이 빠알간 구두 속으로 떨어져
가득 채워져
반짝반짝 그 빛이 보석 같았는데
어느새 구두가 빠알간 꽃으로 변해
니가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
확! 그 꽃을 채가
이건 내 꺼야, 웃으며 어린 아이가 달아나
난 그냥 기뻤어
흐뭇하고 행복했어
그러다
세상은 고통스럽구나 중얼거렸어
네게 꿈 이야기 하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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