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승희씨,
그리고 조형곤씨는 특별히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축하냐구요?
저는 전주에서 5년을 남편과 살면서 1남 1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멀리 이곳 강원도 땅 원주 시댁으로 이사를 온 사람이라서 이제야 알게 진행자가 되신 것을 알았답니다.
전주에 살 때는 아침이면 항상 습관처럼 듣던 프로그램이 전주 MBC 여성 시대였는데 원주로 이사를 온 후에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 엊그제 전주 언니 집에 놀러갔을 때 여성 시대를 들어보니 진행자가 바뀌었다 이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축하를 드려야지요? 이렇게 멀리 강원도에서 축하를 받은 것은 처음이지요?
원주 시댁으로 온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갑니다. 허지만 아직도 가끔 향수에 빠져 고생을 한답니다. 그런 때 여성 시대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성 시대를 듣고 있답니다. 지난주에 전주에 다녀와서 알았거든요. 인터넷을 통해서 전국 어디서든지 여성시대를 들을 수 있다고 형부가 컴퓨터로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일주일 방송 분을 항상 들을 수가 있군요. 아무 때나 시간에 구애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저같이 인터넷으로 듣는 사람은 아직도 젊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계신 윤승희씨와 활짝 웃는 모습의 핸썸한 조형곤씨의 사진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답니다.
진즉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앞으로 고향 냄새가 그리울 땐 인터넷으로 여성시대를 듣겠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아폴로 눈병이 심각하게 번지고 있지요.
지난주 월요일 아침이었던가요? 전주 언니 집에 갔을 때 12살짜리 조카가 안과 가는 날이라고 언니가 저더러 접수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겠어요?
아침이라 화장도 하지 않은 얼굴이고 또 피곤하여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몇 일간 언니집에서 공밥 얻어먹어야 하는 신세인지라 군말 없이 보험카드를 들고 20분을 걸어서 아침 일찍 안과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과는 2층에 있는데 2층 안과에서 출발한 줄이 도로까지 이어져 있는 거 아닙니까?
그 때 시간이 아침 8시인데 말이지요..
접수는 아침 8시 30분부터 시작된다는데 그 때까지 무엇으로 시간을 보낸다냐..
빨라도 9시30분이 넘어야 접수가 된다는데.. 한 시간 반 동안을 이렇게 우두커니 줄만 서 있어야 하나.
우리나라는 참으로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월드컵 입장권을 구하기 위하여 텐트를 치고 2박 3일을 기다리던 모습 생각나십니까?
또, 전학을 보내면서 좋은 학군에 배정 받기 위해 몇 박 몇 일 줄을 서 있는 모습도 생각 나시죠? 몇 년 전에는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하여 몇 일간 줄을 서 기다리는 장한 한국의 엄마들의 모습은 어떻구요.. 물론 그 때마다 자리를 잡아주고 그 수고의 대가로 돈을 챙기는 독특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요..
이제 안과에 갈려면 이렇게 줄을 서야 하는구나.
그래도 안과에 가기 위해 텐트를 치고 1박 2일 기다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습니다.
허지만 그날 아침은 그렇게 흐믓 할 수가 없다라구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 인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때만해도 자가용이 많지 않아서 추석이면 모두 버스를 타고 고향에 갔었지요. 그 때는 버스 터미널에서 서로 먼저 타겠다고 끼어들고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힘없는 저는 항상 뒤로 밀리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그런 곳에는 질서를 유지시키는데 으레 경찰관이 동원된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줄을 서야 하는 그 어디에도 질서를 위하여 경찰관이 근무를 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이만큼 올랐구나 하는 흐믓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누구 한사람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늦게 오는 사람은 당연하게 뒤에 줄을 섰습니다.
그나저나 9시 30분까지 무엇을 한다냐.. 갑자기 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면 카세트라도 하나 가지고 가라고 할 것이지.... 저는 가방을 뒤졌습니다. 원주에서 여기에 오는 차 안에서 읽다가 덮어 둔 책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자.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책을 꺼내는 내 손이 갑자기 멈추어졌습니다. 주변 어디를 살펴봐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많았는데 책을 든 학생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대신해서 접수를 하러온 어떤 아줌마가 생활정보지를 열심히 뒤지고 있을 뿐 아무도 책을 든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잠시 망설였습니다.
학생들도 책을 안 읽는데 아줌마가 이런 고상한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비웃지나 않을까? 이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그 때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이 내 뒤에 줄을 서면서 망설임 없이 책을 꺼내 읽는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순간 책을 읽을까 말까 망설인 내가 정말 부끄러웠고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왜 나는 저 대학생 같은 용기가 없을까? 이렇게 할 일없이 줄을 서 있으면서도 책을 읽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정말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Tv에서 책을 읽자는 프로를 재미있게 보았는데 아직도 이게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이구나 하는 실감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8시 30분이 넘어서야 서서히 줄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면서 멀뚱하게 서 있는 저 사람들이 언제부터 책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오만한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제부터 이런 자리에서 책을 꺼내드는 것에 용기라는 것이 필요 없는 날은 언제일까 생각을 해 봅니다.
책을 읽으며 접수를 마친 시간은 9시 45분이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고 그냥 멀뚱하게 기다렸다면 그냥 보내 버렸을 시간 1시간 45분이 정말 지루하고 피곤했을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독서가 이런 지루한 시간을 때우는 수단이 아닌 생활이 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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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