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정이 들고 포근한 조 형곤님. 윤 승희님 그리고 홍 현숙 작가님 방송 잘 듣고 있습니다.
평소에 친 형님처럼 잘 지내는 분이 보신탕을 먹어야 겠다며 내 트럭에 개을 싣고 개 잡아 주는 곳으로 가자고 하더군요. 그 형님이 집에서 기르던 개를 철사로 목을 묶어 트럭에 싣는데 말 그대로 개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발 버둥을 첬습니다. 내가 " 형님! 이 개는 계속 기르시고 진안 장날 한마리 사서 잡으세요" 하고 형님의 눈을 보니 형님의 눈동자가 빨갛게 충혈이 되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 같았습니다.
저의 집에는 해피(시츄종)라는 애완견이 있었습니다. 해피와 우리 가족과의 만남은 작년 12월 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가까이 잘 지내는 전주에 사시는 분이 해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아이들의 최고 선물이 애완견 일때라
세 아이들의 등살에 해피는 제 대로 잠도 들지 못 했습니다.해피는 방안의 일정한 장소가 아닌 아무데나 대 소변을 봤습니다. 몇 일간 화장지와 걸레를 들고 따라 다니던 아이의 엄마가 견디다 못해 문 밖으로 집어 던졌습니다. 세 아이들은 엄마는 나쁜 사람이라며 해피 춥겠다며 이불을 덮어 주고 엄마.아빠는 해피 옆에도 못 오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해피를 좋아 할 일이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형님 동생 하며 잘 지내는 집에 가는데 해피가 따라와 조금 있다가 가겠지 하고 아이의 엄마는 방안에 들어가 몇명이 모이다 보니 점심도 해 먹고 집에 갈 려고 방문을 여니 해피가 벌벌 떨면서도 몇 시간을 아이의 엄마 신발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후 부터 아이의 엄마는 아이들 보다 해피를 더 좋아 했습니다.해피와 아이들과 아이의 엄마와의 관계가 잔 정이라면 나와는 눈 빛만 보아도 서로를 아는 깊은 정이 들었습니다. 일 하려 갈 때마다 함께 가서 아무리 어두워 져도 혼자 집에 오는 일이 없고 비에 젖어 무 거운 몸과 추위에 떨면서 아이들이 집에 가자고 해도 나의 눈을 바라 본다. 한 번은 산에 고사리를 꺾으려 갔는데 해피 생각을 하지 않고 와서 보니 해피가 집에 없었다.다시 먼 산으로 달려가 내가 앉았던 자리에 가 보니 해피기 꼬리를 쳤다. 내가 산에 돌아 다니다가 그 곳으로 올 줄 알았나 보다. 해피가 집에 있을 때면 나의 차와 경운기 소리를 구별하여 수백 미터를 마중 나온다. 이웃집의 아저씨나 아이들이 우리 집 아이와 장난을 치고 때리는 시늉을 하면 계속 짖어 내며 물것 같은 행동을 한다.해피의 죽음이 예견 되었던 것은 포도밭 가는 길목에 큰 개를 기르는 곳이 있는데 해피가 인사라도 할 려는지 겁없이 달려가 꼬리를 치는 순간 송아지 만한 개가 해피를 한 입에 물어 흔들었다. 내가 달려가 고함을 치고 무섭게 노려 보자 입에서 내려 놓았다. 그때부터 해피는 다리를 절고 몇 일간 고생을 했지만 그 곳을 지날 때면 몇 십미터 이상을 돌아서 다녔다. 사고를 당한 날은 어쩐 일인지 그 큰 개가 없었다. 해피가 조심 스럽게 주변을 살피 더니 깜짝할 사이에 움직이고 있는 내 차 밑으로 들어 왔다. 그 큰 개가 없자 마음 놓고 달려온 것이 차 바퀴 밑으로 들어 왔던 모양이다. 내가 멈추웠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때는 세아이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아이들은 눈물 바다가 되었다.나도 울먹이며 아이들을 진정시켜 아직 까지 온기가 남아 있는 해피를 보듬고 고추밭옆 양지 쪽에 묻어 주고 큰 딸아이 혜라는 나무 막대기 두개를 칡으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 주웠다. 그리고 그날 오후 세 아이를 데리고 저의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가서 절을 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해피의 무덤만 기억 할것 같아 너희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라는 것을 알려 줄 생각 이었다.
해피를 선물 해 주시고 잘 자라는지 전주에서 이곳 까지 여러번 오신 그 분과 은재.래영이게 정말 죄송합니다. 몇일 전에도 아이들과 포도 밭에 갔는데 9살 짜리 민기가 무심 결에 "해피야 ! 해피 어디 있어? 하길래 우리는 모두 울었습니다.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 서면 마당 한 구석 어디에서 뛰어 나올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정말 방송용이 아닌 누구에게라도 넋두리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해피를 선물 해 주신분은 " 여성 시대의 윤 승희 아나운서님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