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 원 서
탄 원 인 : 송 행 대
◆ 화성연쇄살인사건 7차, 8차, 9차 희생자는 막을 수 있었다.
- 탄 원 내 용 -
존경하는 화성동부경찰 서장님께...
누구나 화성지방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그것은 1986년 9월 15일~ 1991년 4월 3일에 이르기까지 발생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공포의 화성 부녀자 연쇄 성폭행 살인사건일 것입니다.
당시 경찰과 민간 기동대원 포함 2백만 명이 넘게 사건에 참여했다지만, 결국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채... 비극의 희생자만 남겼습니다!
제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집은 전주이고, 2006년 8월경... 2006년 6월 6일 전주여대생(전북대 이윤희) 실종사건으로 인하여... 실종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검색하다 제일 먼저 화성여대생 실종사건 및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린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멀리 경기도 화성지방에 살인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무서운 지방이라는 소리만 들었지... 별 관심도 없었지만, 제가 설마 화성사건에 이렇게 깊게까지 파고들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2006년 8월경... 당시 검색 기사들을 찾아 읽었고, 검색기사를 읽다보니... 화성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악마J)이 바로 눈에 들어왔으며... 그런데, 왜 화성경찰은 범인을 안잡는 것일까? 아니 왜 수사를 안하는 것일까? 궁금했었고... 그래 바로 사이버 경찰청과 화성경찰서 게시판에 범인(악마J)을 찾았으니 수사해달라 글 올렸었고,
하지만, 뭐 이렇다할 답변(관심)은 없었고... 화성경찰서 게시판을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그렇게 그렇게 저 혼자만 떠들었습니다!
그러다... 07년 9월경 처음 멀리 낯선 수원지방으로 올라가 당시 조광식 전 수사관을 찾아 만나 인사드렸고, 이래저래 이야기 나누고... 바로 화성경찰서까지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은 만날 수 없었고...
그래 용기내어 12월경 용인 직장을 찾아 J씨를 직접 만나 확인(7차 몽타쥬사진)도 하고... 바로 경기경찰청도 들렀고, 부근의 하승균 소장님께도 찾아가 인사드렸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전주에서 멀리 수원· 화성지방을 찾아 방문하며 오늘까지 왔고, 하지만 공소시효만료라는 핑계로 하나같이 모두 관심 밖이었습니다.
당시 사건을 정리해보면...
1986년 9월 15일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최초로 1차 살인사건이 발생하였고... 1987년 5월 2일 6차 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공포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동일범에 의한 연이은 2차 3차 4차... 화성연쇄살인사건 발생은 전국을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경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지만, 결국 범인을 못 잡은 채 87년 한해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1988년 새해는 밝아왔고, 1월 4일 수원경찰서에서는 시무식이 있던날... 화서동 논 부근에서 살인사건 발생 소식을 접합니다!! 바로 당시 하승균 계장님은 급히 사건현장으로 달려갔고... 볏단 속에 사체를 확인한 순간!! 마치 87년 1월 화성군 황계리 논에서 발생한 5차 사건과의 모습이 확연히 교차됩니다!!
이는 바로 ~동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의 동일범 소행임을 알았고... 하지만,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진급시험 준비에 후배 형사들에게 사건을 맡기게 되고 휴가계 제출로 수원사건과는 멀어집니다...
그리고, 수원 후배 형사들은 주변 탐문수사 등을 통해 사건당일 밤 현장부근에서 명군과 정군이 ‘불을 지피고 놀았다’는 목격자 제보를 받습니다!
이에 1월 6일 유력한 용의자로 명군과 정군을 검거하게 되었고... 바로 추궁한 결과 사실임이 밝혀졌고... 명군은 황계리 논 부근 사건도 이야기 합니다!! 이 때 화서동에서 화성지방에 갈 때 경찰 검문·검색을 피해 철길따라갔다고 말합니다.
정군이 범행에 사용했던 칼도 발견했고... 숙지산 소굴까지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사관들은 희생자 김양의 시계를 찾아야한다는 생각에 수원시청 앞 야산에 묻었다는 시계를 찾기위해 1월 8일 명군과 함께 수원시청앞 야산에 올라갔고... 그런데 갑자기 명군은 뒤로 수갑이 채인채 산 아래로 도주했고... 이에 놀란 이왕재 형사는 도주하는 것을 잡기위해 급히 뒤쫓아가 뒤로 수갑이 채인채 전혀 무방비 상태인 명군을 그대로 밀쳐버립니다!!
바로 유치장으로 데려왔고... 이미 명군은 눈동자가 흐릿했지만, 수사관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모른채 설마 하고 그대로 방치합니다!
결국, 1월 12일 명군은 유치장에서 그대로 졸도했고... 급히 경기도립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계속 의식불명 상태로... 이미 수원경찰서는 발칵뒤집어졌고... 누군가 사태(뇌사상태)를 책임져야 한다며... ~하여 명군이 뒤로 수갑이 채인채 도주하다 밀쳐 넘어져 머리를 다친 것은 뒤로한 채... 명군이 도주하는 것을 잡아서 발로차고 나뭇가지를 꺾어 때린 것으로 갑니다!
▲ 경향신문 | 1988. 01. 05. ☞ 수원서 여고생 피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수법 비슷~
결국, 진실(수갑이 뒤로 채인채 도주하다 무방비 상태로 밀쳐 넘어져 머리를 다침)은 사라진 채... 수원경찰서 구타·고문사건으로 보도되고... 이에 담당 3명의 수사관들은 구속됩니다...
이에 정군 어머니는 검찰에 경찰 가혹행위 허위자백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결국, 검찰에서는 유력한 용의자 정군을 기소유예로 석방하고... 명군은 2월 18일 숨지게 되었고... 수원사건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정군은 다음달 3월 바로 군에 입대합니다.
그렇게 시간은 말없이 흘렀고, 9월초...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 부근에서 비극적인 7차 화성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은 또 발생합니다.
이에 또 하승균 계장님은 급히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바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동일범 소행임을 직감... 범인의 도주 흔적을 발견했고... 다음날 목격 버스기사님을 찾아 화성악마 몽타쥬 사진을 만듭니다!!
지옥에서 살아난 관항리 김 여인의 진술과 거의 일치했으며... 하승균 계장님은 즉시 7차 사건은 수원시 화서동 사건당시 화성악마의 동일범 소행임을 알았고... 그 화성악마가 수원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90년 11월경 8차 화성사건(원바리 고개부근) 발생!!
91년 4월 마지막 희생자 9차 화성연쇄살인사건(동탄면 반송리) 발생!!
당시 수원지검은 수원시 화서역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화성악마J)를 기소유예로 놓아주었고... 결국, 비극의 7차 8차 9차 희생자를 만들었으며...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채... 2006년 4월 3일 공소시효만료로 지금은... 비록 공소시효만료는 지났다지만, 당시 화성사건의 진실은 밝혀져... 다른 사건도 예방하고... 혹시나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의 화성 희생자는 막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당시 경찰과 검찰의 실수를 숨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에 [공소시효만료]화성연쇄살인사건 재수사(악마 J씨) 탄원서를 제출하오니 비록, 범인을 처벌하지 못하더라도 당시 억울한 희생자와 피해자들...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은 밝혀졌으면 합니다.
2010년 08월 일
탄 원 인 : 송 행 대 (인)
화 성 동 부 경 찰 서 장 귀하 - 화성연쇄살인사건 악마 J씨 재수사 탄원 서명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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