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후 지금까지 죽음과 삶, 자기 모멸, 부정, 허무, 절망에 대해 끈질기게 덤벼온 작가가
이번 시집에서는 사뭇 태도가, 아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죽음이나 허무, 절망이라는
주제를 버린 건 아닌데, 아니 오히려 시집 어디를 펼쳐도 둥둥 떠다니는데, 길어야 열 줄을 넘지 않는
시들에서 모든 걸 놓아버린 사람의 멍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할까. 어쩌면 이번 시집이 최승자 시인의
마지막 시집일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예감도 느껴진다. 이 시대에 가장 날카롭고 뜨겁고 치열한
시인이 던지는 사자후 뒤의 쓸쓸한 울림이 느껴지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