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蓮池) 수렁에 서 있는 왜가리 흰 연꽃이여.”(<왜가리-아버지학교 7> 부분)
“저 흰 그늘, 혼자만 녹지 못하고 잠시 멈칫거리는 시린 것,/ 가슴에 성에로 쌓이는 저 아린 것, 조런 실타래가 엉켜서/ 마음이 되는 거다. 빨래집게처럼 움켜잡으려던 이름도/ 미음처럼 묽어짐을, 고삭부리 되고서야 깨닫는구나.”(<새-아버지학교 9> 부분)
<어머니학교>처럼 <아버지학교>에도 생전 아버지의 말씀을 생생한 입말투로 옮겨 놓은 작품들이 여럿이다. 아버지라는 자리의 영광과 부담,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어 갈 자식을 향한 염려와 자부, 그리고 먼저 세상을 살아오면서 챙긴 나름의 깨달음과 교훈 등이 시집에는 그득하다. 그러나 자식이란 애물이어서 “아버지를 꺾지 않고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투로 엇나가곤 한다. 그 바람에 “아버지의 뒤편이 자꾸만 꺾어졌”(이상 <신발-아버지학교 48>)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뒤늦게 “아버지는 본래 빈 뚝배기(…)/ 겨울 논, 속이 파먹힌 우렁껍데기”(<목젖 봉오리-아버지학교 54>)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후회는 늦고 자책은 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어머니학교’의 동창생이고 ‘아버지학교’의 불량학생들”이라고 시인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