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물론 사물, 도구, 지구에 대해서도 겸손된 언어를 적는 시인 함민복의 시는, 그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인간과 세계를 번역"한다. 그의 시에 의해 우리의 삶, 사회, 문명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보이는 모든 것들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 애써 보지 않으려는 것들이 그의 시에서 숨을 얻는다. 그래서 그의 시적 상상력은 읽는 이를 불타오르게, 상상하게, 종내에는 변화하게 한다.
새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은 8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찬찬한, 그의 느린 한 발 한 발에 담겨 있는 세월의 무게는 70편의 마디로 풀어 쓰여졌다. 선한 마음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언어는, 오랜만의 시집에서 한결 부드러운 서정의 힘을 발휘한다. 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여유로움을 느끼게하는 그의 시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가난한 삶을 노래해온 지난날의 연장 선상에 있지만 한결 따뜻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평등한 삶을 지향하는 시인의 사유는 “감겨 제 몸을 재고 있”는 줄자(「줄자」), “살아 움직일 때보다” 더 무거운 고장난 시계(「죽은 시계」), 녹이 슬어 버려진 저울(「앉은뱅이저울」)처럼 문득 삶의 남루함을 깨닫게하는, 제기능을 잃어버린 우리 주변의 사물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것이 고달픈 일상을 더욱 무겁게 하는 들춰냄으로 닿지 않는 것은, 이 가난한 풍경들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가운데 그 모든 장삼이사들의 끈기 어린 의지적 면모를 살며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한 순간도 가벼이 보지 않는 시인의 기록은 꾸밈 없는 증명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게 애틋한 마음을 건네며 다가선다. 가난을 일으켜 세우는 긍정의 힘이 있기에 그의 시는 가난하면서도 따듯하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흔들린다」)기를 소망하는 그의 시는 더 나은 삶과 사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