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그곳에 가고 싶다 방송내용

** 전남 강진

 

** 다산초당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하였고 그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의 재취가 남아있는 다산4경이 있다.

다산선생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 영랑생가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모란이 피기 까지는" 등 80여 편을 발표하였는데 그 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 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영랑 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차례 전매되었으나 영랑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있다.

 

** 백련사

839년 신라 문성왕 때 무주 무염이 창건했다. 그 뒤 고려 희종 7년 원묘국사 요세에 의해

건물 80여칸이 중창되었다. 고려 후기 120년 동안 고려의 여덟 국사를 배출했다.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을 개설하여 침체된 불교의 중흥을 꾀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이 절을 가리켜 "남쪽 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며

동백 또한 곁들여서 창취가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할 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