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은 나이에(당시나이:28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조그만 털실가게를 열고 있을때
많이 취해서 들어온 청년은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전축포를 짜 달라며 한 웅큼의 돈다발을 나에게 내밀었고
내가 술취한 청년에게 지금 많이 취했으니 맑은 정신 일때 오라고 하자
대뜸 나에게 "댁이 결혼을 안했다면서요"?
"저 당신과 결혼하고 싶은데요"?
나도 결혼을 안한 것이 아니라 못했다고 했더니
나에게 순진하게 생겼다는등 , 착하게 생겼다는등
예쁘게 생겼다는 말 말고는 좋은 형용사로 나를 표현해 주었다
사실 지금도 다리가 아파서 세번의 수술과 네번째의 (3월18일) 고관절 재수술을
앞두고 있지만
세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체장애 4급의 장애인인 나는 건강한 믿음직한 청년의 프로포즈를 받고 마음이 흔들려서
그이후 친구 부인의 소개로 그청년을 만났는데
어찌나 점잖하든지 "그래" 나는 몸이 불편한 사람인데 내 사정을 다아는 청년이
결혼하자 했으니 나의 장애에 대한 불평은 없겠지, 하는 마음에
양가의 염려를 뒤로 한체 우리는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날부터 고주망태가 된 남편은
생활 방식이 너무나 나와 달랐다.
열심히 일하며 공부한 나와
일하고 남은 시간에 술을 마시러 다니는 남편은
정말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부부였다.
오죽했으면 둘째딸이 초등학교 다닐때 어버이날 편지를 했는데
우리도 안싸울게 아빠 엄마도 싸우지 마세요? 하는 그대목에서
우리는 싸운줄도 모르고 우리가 언제 싸웠나? 하고 웃었다.
남편의 점잖게 보이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그냥 보통 말투도 툭툭 쏘아 붙이는?
언제나 재촉하며 서두르는 남편?
나의 외로움은 아랑곳없고 늘 여가 시간을 밖에서 즐기는?
그런 남편도 좋은점을 생각하니, 오히려 나보다 더 많았다.
그 좋은점 중에 가장 으뜸은 : 나의 세번의 수술하고 입원 할때 발휘 되었다.
결혼하여 35년 3개월 동안 남편은 나의 코골이에 시달렸겠지만
입원하여 병실에 입실하면 남편은 나대신 병실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제 처가 코골이가 보통 사람들보다 좀 심하니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며
어김없이 양해를 구할 뿐만 아니라 병실의 방장 역할도 마다 하지 않고
자처하여 나의 코골이에 대한 입막음을 자처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남편의 입막음에도 아줌마들은 자기 남편같으면 이혼하자고 할것 같다며
아저씨가 대단하다고 들 칭찬도 자자했다
이제 내나이 육십중반에 이르고 몸이 불편 하면서 깨닫게 된 남편의 소중함?
남편이 점잖으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해서 불편할것이고
툭툭 쏘는 말투도 이제는 편안해졌고
언제나 재촉하며 서두르는 남편 덕분에 남편이 알아서 잘하니 편해졌고
건강하여 밖에서 모든것을 해결하니 그것도 이제 내복이려니 한다.
언제나 몸이 불편한 나에게 따뜻한 남편이었고
누구보다 부지런하여 가정에서도 자상한 아빠였다
내가 병원에 입원 할 때마다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남편
지금 생각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남편과 나였지만
사랑했기에 모든 힘든 과정을 견뎌 왔던 것 같다.
4월 25일은 첫째딸 결혼식인데
큰딸 아이가 어쩌다 결혼할 사위의 단점을 이야기 하길래
그래 살아 봐라
안 맞는 일이 너무 많을 테니 했더니
엄마? 나 지금 결혼 하지 말란 애기야?
하며, 왜 이런 말을 하지 ? 하는 느낌?
3월 17일 이후에 채택이 되면 아마도 수술하고 입원하여 병원에서 들을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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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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