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세요...

작년 이맘때부터였어요. 좀 오래 걸으면 오른쪽 골반이 아파왔던게...

그러다 말겠지 하며 지내다가 하루는 큰맘 먹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선생님과의 진료시간이 되었는데, 왠지 좋지않은 예감이 들더라구요.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말씀과 함께 소견서를 써 주십니다.

“수술을 해야하나요? 심각한가요?“

선생님은 수술을 해야할꺼고 큰 병원에서나 가능한 수술이라고 하셨죠.

덜컥 겁이 나더라구요.

혹시 수술하다 잘못되는건 아닌지, 혹 걷지 못하게 되는건 아닌지...

직장이 이천이라 주말에만 한번씩 내려오는데

서울의 큰 병원보다는 가족들과 가까운 전주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하고 전북대 병원을 찾았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병명은 “비구이형성증”

태어날 때부터 그랬거나, 또는 어렸을 때 잘못 업는 등 자세이상으로 발생하는데

대퇴골두를 감싸는 부분이 완전하게 감싸지 못하고 있어 나중에는 관절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그래서 지금 수술을 해야한다고...

꽤 까다롭고 어려운 수술이라고, 그래서 일본에서 오신 교수님과 협진하여 수술을 하실꺼라고 하셨죠...

수술 후 2개월 정도 지나면 생활할 수 있을꺼란 교수님 말씀에 회사에는 3개월의 병가를 냈습니다.

2월 7일,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 준비를 하기로 한 날입니다.

설 연휴를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야 하는데, 왠지 마음이 불안하여 명절같지 않은 명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오르게 되었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고 가족들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전 먼저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간혹 수술 후유증으로 신경이 마비되는 경우가 있다는 교수님의 말이 떠올라서요.

다행히 발가락은 움직이더라요. 그런데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뼈를 잘라내고 네 개의 나사로 고정을 했다고 하니 당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철렁 내려앉는 가슴은 어쩔수가 없더라구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으니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하는데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욕창이 생긴다고 하여

엄마는 성인이 된 저를 수시로 자리를 옮겨주시며 등을 말려주고 자세를 바꿔주었죠.

2월의 날씨임에도 땀을 뻘뻘 흘리시는 엄마를 볼때마다 얼마나 미안하고 죄송스럽던지...

그렇게 2주의 시간이 흘렀고, 겨우 목발을 짚을 정도가 되었을 때 걷는것도 힘든 채로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병원의 요구가 있었어요)

시골집은 다리가 불편한 제가 머물기 힘들어 부득이 전주에 사는 동생네 집에 머물기로 하였습니다.

흔쾌히 집으로 오라고 먼저 얘기해준 동생이 참 고마웠어요.

퇴원을 해서도 쉽게 회복되지 않는 다리 때문에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는지 모릅니다.

조금씩 좋아지기는 했지만, 복직을 해야하는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그만큼 좋아지지 않는겁니다.

결국 1개월의 병가를 더 냈고, 푸르름이 눈부신 5월,, 맑은 날씨만큼이나 건강상태도 화창해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도 잘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의자에 앉아서 왠만한 일들은 할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6월 2일부터는 회사에 나가 일을 해야합니다.

여기에서의 생활도 이번주로 마감이 될것 같아요.

아침마다 방송을 들으며 출근하는 동생과 4개월동안 저를 병간호해준 엄마를 생각하며 사연 올리게 되었습니다.

4개월, 결코 짧지 않은 기간동안 남편, 아이들에 저까지 챙기며 회사일까지 해낸 수퍼우먼 은희야...

그동안 정말 고마웠고, 언니도 네가 어려울땐 아낌없이 도와줄테니까 서슴없이 언니한테 말해줘.

내 삶의, 존재의 이유가 된 우리 엄마...엄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거 알아.

따뜻한 말보다 화내고 짜증낸 기억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크고 진실되다는 걸 알아줘.

정말 고맙고, 사랑하고... 늘 가족이 있어 내가 힘이 나고 살아갈 수 있는거 같아.

내가 더 잘 할께...^^ 사랑해~

 

하은선 010-9505-3159

 

6월 2일부터는 제가 회사에 출근합니다.

저는 들을 수 없겠지만, 동생과 엄마는 들을 수 있도록 꼭 방송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