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예비군 통지서를 받고 오늘 아침 저는 회사가 아닌 예비군 훈련장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지금은 전주에서 2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의 고향은 임실입니다. 아직도 부모님께서는 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십니다.
주소지를 고향집으로 놓아둔 이유로 전주에서 임실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문득 군대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들고 저를 향해 뛰어오시고 그 뒤로 위병이 소리를 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일에 바빠 저보다 7살 위인 형이 군생활 하는 동안에도 한번도 면회를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부모님이 5시간 거리인 군대까지 부모님이 면회를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은채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고참들의 심부름과 중대의 작업으로 하루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닌 무더운 여름날 일병 계급을 달고있던 저에게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다되어서 낮동안 면회온 부모님, 여자친구 등 면회소에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 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늦었고 기대도 하지 않은 터라 다시한번 확인을 했지만 저의 부모님이 맞았습니다. 당직사령이 시간이 늦었다며 부모님을 돌아가라고 하셨지만 멀리서 오신 부모님을 그냥 돌려 보낼수가 없어서 간곡히 부탁하여 얼굴만 뵙고 바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위병소 면회장으로 향했습니다. 면회장에 도착하니
정말로 한여름 농사일하는라 햇볕에 검게 그을린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 계셨습니다. 시골집에서 출발하였지만 길을 몰라 헤메다가 이 시간에야 도착했다며 땀방울이 이마를 흐르고 있었습니다. 10분도 채 되지 않은 짧고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부대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손수 만들어오신 떡과 통닭 박스를 제 손에 쥐어주시며 어서들어가 고참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끈에 묶이 떡상자와 통닭은 제법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서서 한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아버지가 신문지를 돌돌 말아 뛰어오고 그 뒤에서 위병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무거운 박스 끈에 제 손이 패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문지를 넓게 말아 손에 쥐어주며, 다시 위병이 소리치는 곳으로 뛰어가셨습니다. 정작 당신은 땀에 법벅이 되어가며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에 눈물을 펑펑 흘리며 부대로 다시 돌아왔습니다.군대를 제대하고 들은 말로는 제가 군대 있는 2년 동안 추운겨울 임실의 시골집 근처로 혹한기 훈련을 하며 행군하고 있는 군인들을 위해 어머니께서 자식생각에 뜨거운 보리차를 큰 통에 끓여 한컵씩 나누어 주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평소 무뚜뚝하다고만 생각했던 저에게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추억입니다.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는길 옛날의 추억을 되새기며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