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방송분

제겐 오랜 친구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9년전...

순창에서 자란 저와 남원 뱀사골에서 자란 친구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전주로 유학오면서 알게됐죠.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교복에 검정 뿔테 안경,

땅딸보인 친구의 모습은 약간은 어리숙해 보이기도 하고...

눈에 띄지 않는 그저 평범한 친구들 중 한명이었습니다.

그런 친구에 호감을 얻은 저는 많은 친구들 앞에 나와 노래하는 걸 좋아했고,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받기를 좋아해 친구와는 사뭇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두사람이 가깝게 지내게 된건... 힘들고 가난했던

자취생활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10시가 되면,

친구와 저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서로의 자취방을 향해 함께 걸어갔습니다...

같은 시간.. 학교 앞 정문에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각자의 아들을 기다렸다가

차에 태워 가기도 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따뜻한 하숙집으로 향했지만...

사춘기였던 우리들 눈엔..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죠...

배가 고플때면 초코파이와 물을 나눠먹으며 배를 채우던 기억...

무더운 여름날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남부시장까지 가서 떨이수박 500원 주고 사 먹던 기억,

추운 겨울날 저의 자취방 연탄불이 꺼지는 바람에

친구 자취방 전기장판 하나로 의지하며 추위에 떨며 잠들던 기억...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때 이불속에서 친구와 이런 약속을 했었습니다.

"우리 이 다음에 돈 많이 벌어서... 꼭 고급차타자!"

 

그래도 그 땐 힘들어도... 배고파도...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참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생도 그 시절이면 끝인줄 알았구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연하게도 서울소재 같은 대학에 다녔고

입학해서도 각자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또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야했습니다.

어렵게 졸업했지만, 그와 동시에 IMF의 불운이 찾아와

저는 공무원 시험준비를... 친구는 컴퓨터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저는 경찰공무원이 되어 아이 둘을 가진 학부모가 되었고,

친구는 내년 1월.. 결혼을 앞둔 늦깎이 예비신랑입니다..

 

친구와 만난 지 올해로 19년.. 그때의 추억이 남아있던 자취방 주변이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흔적조차 없지만... 친구와의 우정과 추억들은

영원히 제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겁니다...

37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내친구 강상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부디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해 봅니다.. 친구야, 내친구여서 고마워...

 

 

사연주신 조계항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