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방송분

 

친정집엔 늘 몇 개의 화분이 있었습니다.

그 화분들은 단순히 공기정화나 장식용으로 선물 받아 모아둔 것들이었죠.

아버지와 어머닌... 생전엔 언제나 정담을 나누시고, 때론 아웅 다웅 하시며

두 분이서 행복한 노후를 즐기고 계셨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 자체였을겁니다.

 

그런데 지난 2월... 평소에 잔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간암을 선고 받은 지 3개월만에 우리 곁을 떠나셨고...

이별을 준비할 틈도 없이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던 어머니는 충격에 빠지셨습니다

늘 함께하던 아버지가 곁에 없으니, 그 빈자리를 지키기가 많이 힘드셨을겁니다...

유품은 모두 치워야겠다고 하자... 알았다고 대답만 하시고는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해두셨더군요... 그리고 영정사진 앞에는

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과자를 놓아두셨습니다...

사진을 바라보며 늘 '외롭다'셨구요...

아버지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고, 어머니는 말 수도 적어지고 우울해 하셨습니다.

형제들 모두 어머님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많이 야위셨구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베란다에 놓인 화분 수가 점점 많아지더군요.

너무 불어나, 어머니 혼자서는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얼굴엔 우울한 표정이 사라지고, 밝은 미소가 생기더군요.

화분을 정성들여, 자식처럼 애지중지 하시는 엄마...

화원에서 시들해져 버리려던 화초도 가져와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꽃잎 하나하나 윤기가 도니, 화원에서 다시 탐내기도 할 정도였구요...

화초의 이름조차 모르고... 누구에게 화초가꾸는 법을 배운 적도 없으신데,

그저 마음을 다해... 정성으로 가꾸고 계셨습니다...

아마 그간의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자식키운다 생각하시는 것 같네요...

이젠 집 한켠에서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버린 화분들...

식사를 마치고는 꼭 화분들 곁에서 차를 한잔 하신답니다...

어떤 화분이 물을 필요로 하는지... 양분을 필요로 하는지 확인해야하거든요...

 

이젠 '외롭다'는 말.. 사라지고 밝아지신 어머니 때문에

저 역시 화분들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이 화분들을 가꾸시면서

즐겁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사연보내주신 고현복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