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서일까요... 가슴시린 기억들이 잔물결이 되어 일렁입니다...
불혹의 나이를 훨씬 넘겼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어 그런가봅니다.
20대 초반을..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그곳 식구들을 돌보며 생활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가 된 그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세상속의 또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기분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그러면서 알게 된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제가 돌보던 시설인의 동생이었는데...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꿋꿋히 현실을 헤쳐나가는
당당한 모습과 따뜻한 목소리에 끌렸고 점점 가까워지게 됐죠...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에 다녀올 생각인데 함께 가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
왠지 모르게 설레이더군요... 그에게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행복감과
떨리는 마음으로 따라나섰고, 그의 시골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후로 그와의 만남이 뜸해지더니...
어느날부턴가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연락을 해도, 아무런 대답이 없더군요.
"무슨 일이 생긴건지, 왜 갑자기 그러는 건지... 나한테 이래도 되는건지"
묻고 싶은 것들 투성이었지만... 저도 그저 침묵으로 아픔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니, 형을 돌보러 다녀가는 그의 뒷모습만 볼뿐...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었죠...
그 사이 제 가슴은 새파랗게 멍이 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려올 대답은 절 더 아프게 할 걸 알기에
차마 물을 수 없었던 것 같네요...
저와 그의 만남을 몰랐던 형이.. 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형을 생각해서 절 떠나야 했는지... 짐작만 할 뿐, 확신은 서지 않더군요...
그렇게 멀어진 채, 각자의 삶을 살게 되어 두 아이의 엄마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혼자 눈물을 훔칠때도 많았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멍해진 내 자신을 발견한적이 많았습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떠나야 했던 이유"를 말해줬더라면...
아니면 제가 먼저 물었었더라면.. 오늘날의 이런 아픔은 없었을까요...
계절이 바뀔때마다... 찬바람이 불어올때마다 떠오르는 미련에
또 속울음을 삼켜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