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동에는 뇌졸중으로 한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고 말씀까지 못하시는 한 아저씨가 살고 계십니다. 몸은 많이 불편하시지만 수영장에 가서 재활훈련도 하시고, 저희 동에서 가장 부지런 하셔서 해도 뜨기전에 일어나 근처 밭에서 농사도 지으시는 분이랍니다.
어느날 그 분께서 식사도중 다리를 헛 짚어서 머리를 식탁에 부딪혀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저희 부부가 운동을 한 후 아파트 1층 현관 문에 들어서려는데 그 아저씨께서 현관에 앉아계시고, 관리사무소 과장님과 경비아저씨가 곁에 서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물어본 남편은 망설일 틈도 없이 119구급차를 불러서 그 아저씨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남편은 저희동의 동대표입니다. 분양아파트도 아닌 임대아파트라 활동을 한다고 해서 딱히 활동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야유회를 가거나 하면 찬조금을 내야 하는, 그야말로 봉사직이지요. 그런데도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월례회의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아파트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일처럼 생각하고, 나서서 일하는 편이랍니다. 남편은 저녁 식사할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주머니와 연락이 되어 오신다고 해서 남편이 돌아오려다 보니 아저씨께 "점심을 못 드셔서 시장하시겠네요" 하니 아저씨는 말씀을 못하시니 눈물만 흘리더랍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빵과 우유 를 사 드리고는 집에 돌아왔답니다.
며칠 후 제가 다섯살된 아들아이를 마중나갔을때 아저씨께서 저에게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는것 같아 아들 아이가 오자 그 분을 따라 나섰습니다. 아저씨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느릿 느릿한 걸음으로 저희를 근처 밭으로 이끌어 가시더니 덩그렇게 열려 있는 호박을 뚝 따다가 봉투에 담아서 제 손에 들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손짓 발짓 하시며 근처에 있는 야채들도 가끔 갖다 먹으라는 뜻을 표하셨습니다. 저는 아저씨께서 주신 호박을 감사한 마음으로 들고 오면서 그러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아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큰 돈을 받은 것도 아니고, 좋은 상품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커다란 초록색 둥근 호박을 받았을 뿐인데도 가슴 한구석이 찡하고, 고맙고, 죄송하고, 그랬습니다. 제 손을 잡은 아들아이는 "엄마, 빨리가자, 저 아저씨 정말 느리다 그치?" 하며 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런 걸음으로 집과 밭을 오가며 지은 농산물이기에 더욱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저씨는 그 후로도 콩이며, 과일이며 작지만 정성어린 농산물들을 볼때마다 저희에게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해서라도 예전에 있었던 일을 보답하고 싶었던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저씨의 마음은 이미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저씨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오히려 저희에겐 더 큰 삶에 가르침이 된다는 걸 아저씨는 모를 것입니다.
아저씨, 몸은 불편하시지만 더 열심히 관리하셔서 지금처럼 밝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보, 내가 남편을 잘고르긴 잘 고른거 같아 . 우리 지금처럼 더 이웃을 살피고 서로 도우며 살자구요.
작가님, 그리고 혹시 제 글이 발표되게 되면 아파트 이름은 말씀 안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면 이름도 (이민희)라는 이름으로 해주시면 좋겠구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 2가 941.
주공푸른마을아파트 107/404
(우: 560-879)
902-9535, 010-8538-9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