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길에 영구차 행렬을 봤습니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군요.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장례행렬이었는데도...
아빠 생각이 나서 슬픈 아침이었습니다...
4년 전... 시집도 안간 서른 둘의 노처녀가
매일 아침 밥상이 들어오는데도 이불속에 있다며 , 늘 아빠가 깨우셨습니다.
매일 아침 7시... 평일, 휴일 상관없이 7시가 땡! 하면 아침을 먹으라며...
안 일어나겠다는 절 억지로 깨워 밥상 앞에 앉혀야 같이 식사를 하시곤 했죠.
아침밥 보다는 10분의 잠이 더 보약이라고 생각했던 딸은
아침밥에 집착하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눈꼽도 떼지 않고, 수저를 들고 있노라면 잔소리는 어김없이 시작됐고...
밥상을 물릴때 까지, 잔소리를 늘어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장 훈시가 끝나면, 출근을 하셨고... 그제서야 저는 자유를 만끽했죠.
그렇게 아침마다 전쟁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밥 먹으라며 7시부터 절 깨우시더군요.
새벽 늦게 들어온 걸 뻔히 알면서도 깨우는 아빠가 미워,
밥 않 먹겠다며 완강하게 아침상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빠와의 마지막 아침식사가 되어버렸죠.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미처 손 쓸새도 없이 제 곁을 떠나신 겁니다.
제 달콤한 아침잠을 방해하는 아빠가 미워, 잔뜩 인상쓴 얼굴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안했는데...
아빠가 떠나신지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것도 남편의 식사까지 챙겨가면서 말이죠.
결혼을 해보니, 왜 그렇게 아침밥을 중요하게 여기셨는지 알 것 같더라구요..
따뜻한 밥을 사이에 두고,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또, 따뜻한 밥과, 국으로 속을 든든하게 채워서 나간다는 게 큰 힘이 되더군요...
왜 아빠의 깊은 뜻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지...
다 저를 위해서였는데... 왜 귀찮게만 생각했었는지, 죄송한 마음뿐이네요..
비록 지금 아빠가 곁에 없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던 한마디 한마디를 떠올리며... 매일 든든한 아침식사를 합니다.
사연주신 박혜영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