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지났네요...
인턴시절 마지막 근무는 응급실이었습니다.
늘 정신없던 곳이지만, 그 날은 유독 요란하게 구급차의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메케한 탄 냄새를 풍기며 실려온 환자는 시아버지의 라면을 끓이다
가스폭발로 전신화상을 입고 후송된 30대 초반의 환자였습니다...
머리, 얼굴, 가슴 할 것 없이 배와 등을 제외하고는 숯검댕이와 다름 없었죠...
의료진들은 하나같이 사나흘 안에 급성 패혈증으로 사망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중환자실 격리실에서 집중치료를 시작했죠..
그러던 사이, 전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되었고, 그 환자를 주치의로서 맞이하게 됐습니다.
레지던트 1년차의 하루는 무척 짧답니다.
아침회진준비, 과 별로 자문도 해야 하고, 수술환자 준비, 응급실 콜 담당, 차트정리... 등등
많은 일로 24시간도 부족한 제게 화상환자의 소독은 사실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잦을 땐 하루에 서너번.. 조금 좋아졌어도 하루에 두 번씩..
40분 이상 소요되는 일이라 정신없어, 소독을 미처 해내지 못했을 땐
회진을 돌때마다 지적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죠...
점점 그 환자 병실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졌을 때 쯤,어느때처럼 소독을 하러 찾아갔습니다.
침대 한켠에 젊었던 시절 사진이 놓여있더라구요... 젊고 아름다웠던 모습...
사진을 계기로 그 모습을 꼭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다시 제 자신을 채찍질 해
즐거운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게 되었고,
잦은 대화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상태가 좋아져 일반병실로 옮겼고,
모든 관절의 구축을 펴주는 열 차례가 넘는 수술과 피부이식으로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해 졌을때 쯤..
새벽이었습니다... 처방전을 쓰고 있던 절 찾아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이혼을 하게 됐고, 이젠 병원을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평소,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해주는 걸로 병원에서도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그렇게 환자는 병원을 떠났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화상치료를 할 때 면 그 분 생각이 나네요...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사실꺼라 믿으면, 혹! 방송을 듣고 계신다면 제 도움이 필요하진 않으실 지...
오랜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사연주신 박경진씨 (가명)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