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하고 바꿀 수없는 우리 엄마께

   매일 가게에서 오후 1시면 보는 친정아버지가 급한 목소리로 " 어디냐?" 대뜸 하시면서 빨리 엄마 모시고 병원을 가봐야 겠다하신다.
"아버지! 왜요?"
위암 수술 하신지 얼마 안되는데 아랫배가 아프시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저를 찾으셨습니다.
부랴부랴 집 근처에 산부인과를 모시고 가서 진찰을 하는 순간 의사는 깜짝 놀라면서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라하셨습니다.
나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엄마 손을 꽉 잡고 큰 병원으로 옮기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에 싸여 엄마 이야기도 들리지 않고 마음만 가라앉혔습니다.
진찰이 끝나고 입원 날짜를 잡고 엄마와 나는 아무 말없이 집으로 돌왔습니다. 뭐라고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추석 며칠 뒤에면 일흔 살 생일이 옵니다.
 일 주일 동안 입원해서 이것 저것 검사를 했습니다.
아랫배 아픈 자리를 검사 하고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저에게 "너는 나에게 편지 한번를 안쓰니?" 그말이 자꾸 생각나 수술을 마치고 힘이내서 빨리 회복하라고 도움이 되고자 한번 적어보냅니다.
 사랑하는 엄마!!!!
항상 내 옆에서 나를 길러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한번도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죄송해요.
늦게까지  시집을 못가서 있을 때 정서방이 엄마 맘에 든다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 하시고
아이를 못 가지고 있을때에도 매일 기도를 멈추지 않으시고 입덧이 심해서 밥도 못 먹고 움직이지도 못한 상태로 임신을 하고 있을 때에도 엄마는 힘든소리 하나 하지 않으시고 나를 아기 다루듯이 하루를 빼지 않고 그 몇정거장 되는 거리를 넓은 양푼에 먹을 거리를 잔뜩해서 새벽 아침 부터 머리에 이고 한보따리 빨래감을 빨아서 손에 쥐고 오시는 엄마 그 사랑을 어떻게 갚을까 생각하면 엄마!! 눈물이 먼저 나내요.
사랑하는 엄마!!!
큰 수술이지만 이겨 내고 항암 치료도 잘견더내고  우리 매일 웃으면서 살아요.
위암 수술 뒤에도 엄마는 저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잠도 주무시지도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서 다 해주시고 가시고 그 사랑을 받기만 한 내 자신이 어쩜 딸이 아니 것 같아요.
이제 엄마의 삶의 일부가 나의 삶에 맞춰 가고 매일 전화해서 아버지 흉도보고 서로 의지 하는 삶이 되어 버려냈요.
나를 낳으시고 길러서 또 엄마로 성장하게 해주신 엄마!!
엄마의 그 바다 같은 넓은 사랑은 다 헤아일수 없지만 엄마의 사랑이 여기까지 왔기때문에 제가 세상에서 긍정인 사람으로 살아 갈 수 있었던것 같아요. 엄마 어느 신문사설을 같이 읽으면서 엄마의 머리까락이 도시락에 들어가 것을 부담없이 드셨다는 유명한 기자가 쓴것을 보고 엄마는 저에게 물어보셨죠
"바라 이런사람도 머리까락 재거하고 먹지?"
지금 생각해보니까 김치를 담아보낸 그릇에도 엄마의 머리까락이 나오거나 하면 말없이 빼서 버립니다. 항암 치료로 머리까락이 많이 빠지니까? 나의 엄마 머리리까락이니까요.
엄마 이번에도 힘든  치료 과정이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겨 내는 힘을 주셨으니까 꼭 이번에 다시한번 이겨 내보게요.
우리 가족은 엄마가 이겨내리라 믿어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에게 편지를 써요. 
우리 곁에 더 있게 온가족이 힘을 모으고 있으니까요. 엄마니까 강하게 이겨내게요.
엄마 사랑해요. 아주 많이 사랑해요. 엄마가 가르쳐 주신 사랑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마음껏 줄꺼예요.
엄마 !! 다시 한번 부모 마음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엄마가 아끼는 큰 딸 미겨이가
$$$$ 깨동이 오빠  엄마랑 저랑  온가족과 수술을 앞 두고 있는 환자 분과 같이 듣고 싶어요. "윤향기 나는 행복한사람"신청합니다.  
 017-644- 1572
송천주공 2차 203동 901호 양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