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방송분

아파트 관리소장인 제가 출근하자마자 단지를 순찰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청소를 담당하는 아주머니께서 상기된 얼굴로

일하기 너무 힘들다며 푸념을 하시더군요... 무슨 일인지 여쭸더니,

누군가 아파트 계단에 대변이 버려져서 구역질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인해보니 누군가 고의로 비닐봉지에 담아 버렸더군요.

사무실로 돌아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어른의 것이긴 한데

상황을 미루어보아 치매쯤의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라고 생각했죠.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아침부터 불쾌했다는 주민들도 있고,

재발방지를 위해 경고차원에서 안내글을 썼습니다.

상황의 대강을 설명하고, 혹시 목격자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말이죠...

 

그렇게 하루를 보냈고, 퇴근 무렵,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고개를 숙인채, 힘없이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한참을 멀뚱히 서있더니 어렵게 꺼낸 첫마디는 '저기요.....' 였습니다.

그러고는, 제가 단지별 복도마다 붙여뒀던 안내문을 모두 떼와서 내밀더군요.

잘 달래가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그 검정봉지의 주인이며

엄마가 가서 사과를하고는 꼭 싸인까지 받아오라고 했다는 겁니다...

집에 변기가 고장은 났는데.. 배변의 욕구를 참지는 못하겠고,

뒤처리가 귀찮으니 그냥 아파트 복도에 내버렸다는 겁니다...

 

아이의 이야기가 모두 끝난 순간, 알 수 없는 감동과

가슴이 뭉클해 질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요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각박해져 있는데...

이렇게 모른척 지나가도 될 일을 나서서 해결하고,

아들의 잘못을,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해준 어머님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사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써 아이를 돌려보냈습니다.

그러고는 퇴근길에 곰곰이 생각했죠.

오히려 안내문을 보고, 창피를 주냐며 쫓아와 화를 내거나,

양심을 속이며 조용히 넘어가도 될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밝혀주신점

제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됐거든요.

집에 돌아와,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며 당신같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물으니

그냥 조용히 넘어 갔을거랍니다... 현명한 어머님 덕분에 의미있는 하루가 됐네요.

 

사연보내주신.. 이범한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