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10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두달이나 서둘러 나오느라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고, 온갖 검사로 그 조막만한 손등은
주사바늘이 쉴 새 없이 꽂혀야 했고 흉터만 삼십여개나 됐죠.
그런 아이들이 퇴원하던 날 전 무척이나 설레였습니다.
그때 걸려온 전화... 외할머니께서 갑작스레 난 사고로,
대학병원으로 급히 실려가셨다는 겁니다.
엄만 잰걸음으로 병원으로 향하셨고, 서울에 계신 외삼촌이 내려오시는 등
온 집안이 분주하게 밤을 보냈죠.
저도 산후조리중인지라 찾아가보지 못해서 불안한 마음만 갖은 채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밤을 꼬박새고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돌아오신 엄마는
김칫거리를 잔뜩 이고 오셔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씀없으신 채
김치를 담그기 시작하셨습니다.
전 아이들을 데리러 갈 준비를 하며 생각했죠.
언제 위급한 상황이 닥칠지 모르는 이 시점에, 김치가 없으면 안먹어도 되고
사먹으면 그뿐인데 무슨정신으로 김치까지 담그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서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산후조리하는 딸이 반찬없어 밥 못먹을까...
평소에 김치 없이 식사하시는 법이 없는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시진 않을까...
의무감과 간절함으로 정성껏 김치를 담그셨던 거죠...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또 한번 김치를 담그시던 어머니는
병원에서 걸려온 위급한 전화에 뛰쳐나가셨습니다.
아직은 할머니를 보내드릴 수 없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날저녁 할머니는 영영 우리곁을 떠나셨지만,
전 쌍둥이가 품에 있던지라 한번도 찾아뵙질 못했습니다...
철없던 그땐, 외할머니를 잃었다는 슬픔보다도, 태어난지 한달만에서야 안아본
쌍둥이들의 미소가 마냥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아직도 가까이 살면서 딸로써의 도리를 다 못했다는 죄책감이
한이 되신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저역시 아무 도움되지 못해 죄송한 마음 뿐이구요.
이젠, 엄마도 할머니를 조금은 잊으시며 자식들 효도 받으며
깊어가는 가을, 단풍구경도 하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식구들의 바람이예요.. 엄마.. 사랑해요 ....
사연보내주신 최지영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