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여덟 번째 맞는 생일이었죠.
연애시절부터 제 생일이면 아내로부터 꼭 받는 선물이 있었습니다.
1년 동안 꽉 채운 돼지저금통. 온통 백원짜리 동전에
제 손바닥만 저금통이라 그리 크진 않지만,
그래도 제 생각하며 모았을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선물이었죠. 월급을 많이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다가,
공과금에 할부금 계산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살림에도
거르는 법 없이 제게 해마다 돼지 한 마리씩을 안겨줍니다.
항상 얇은 지갑 불평하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모아뒀다가
위기상황에서는 목돈을 내놓는 지혜도 발휘하는 현명한 여자죠.
항상 생일때면 그런 아내의 소중함을 느끼며
부족하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는데,
올해엔 왜 이렇게 아껴도 아껴도 힘든지...
시쳇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도 높은 물가에 저도 아내도 지칠 때가 많더군요.
그래서 싸움이 잦았고, 올해 제 생일은 냉전 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제 생일인지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집에 돌아왔는데,
잘차려진 생일상 한쪽에 연두색 돼지저금통이 어김없이 놓여있더군요.
별 다른거 있겠나 싶어 외로운 식사를 마치고 저금통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평소반절밖에 차지 않아 소리가 요란한거 있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 나랑 싸웠다고 이런식으로 복수를 하나?'
턱없이 치솟은 물가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쉬웠을껄
아직 전 철이 덜 들었는지, 부부싸움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방에서 티비를 보고, 무심코 방안에 들어갔는데
꽤 무거운 저금통안을 들여다보고 싶더군요. 안에 들어있는 것들은
온통 500원짜리 동전. 놀란 마음에 뜯어보니
내년 생일엔 더욱 아껴서 500원짜리로 가득 채워주겠다는
아내의 사랑스러운 편지. 짠해지는 마음 가눌 수 없어 울어버렸습니다.
이런 아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저 아내 때문에 삽니다.
사연주신 정한종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