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방송분

20년전, 88학번 꿈나무로 서울 소재의 한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시골동네에서 서울로 대학갔다고

부모님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었죠.

하나 있는 딸이라고, 넉넉지 않은 살림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고,

온 가족의 기대를 한 몸에 떠안은 채,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남들처럼 동아리에 가입했고, 얼떨결에 신입기수를 책임지는

기장이라는 감투를 갖게 됐습니다. 선배들이랑은 가깝게 지낼 수 밖에 없었죠.

그동안 공부의 압박이 너무 심했기 때문일까요.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직행했던 그동안의 제가, 자유로운 자취생활에 빠져

선배,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며 외박하기를 밥먹듯이 하게 됐습니다.

물론 집에 계신 부모님들은 까마득히 모르셨구요.

 

그러다가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순진한 제가 한 선배를 만났고,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랑에 부푼 꿈도 꿨답니다.

그 사람은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는 열혈청년이었고,

전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뒤에서는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만났고, 그러던 어느날 선배에게 200만원이라는 돈이 필요해

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휴학을 결심했습니다.

그 방법 밖에는 없었고, 한 학기쯤 쉬면서 공부하는 건 부모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

깨닫지 못하는 철없던 여대생이었거든요... 이 세상에 사랑만이 전부라고 믿는...

그러던 사이, 선배는 부모님의 반대로 홀연히 유학을 가게 됐다며

제 곁을 떠났습니다. 그 충격으로 저는 복학하지 못하고 부모님께 돌아와

집안일을 도왔습니다. 부모님은 그런 제가 못마땅해 한숨만 푹푹 내쉬셨구요.

그게 몸이 약하셨던 엄마껜 심적인 고통으로 병이 얻으셨고,

전 그때서야 그간 제가 철없고 경솔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제 나이 스물 일곱, 느즈막히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스물 아홉에 교사가 되었답니다. 하지만 효도할 새도 없이,

첫 월급으로 제가 사드린 구두를 품에 꼭 안은 채 눈을 감으시더군요...

대견하고 고맙다구요, 지난 사랑을 후회하진 않지만,

오로지 한 길밖에 몰랐던 제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뿐인 딸 평생배필 만나는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크구요.

엄마 기일이 다가오는 요즘, 사무치게 엄마가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엄마...

 

 

사연 보내주신 진경화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