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로 시집온 8년차 주부이자 세아이의 엄맙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시골이 좋아서... 이곳까지 시집을 왔어요.
뿌린데로 거두는 정직한 땅만 바라보며 사는 남편에게 푹 빠져서였겠죠.
어려서부터 현모양처로 살고싶었던 저이기에, 시골에서 텃밭가꾸며
뜰에는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 좋겠다 싶어 신랑만 믿고 살기로 했답니다.
그래서 부모님 가슴아파하시는 것도 모른채 한채,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땅냄새 풀냄새가 행복이려니 하고 세아이를 낳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쉬운일이 아니더라구요.
모내기부터 시작된 한해농사는, 감자심기, 모떼우기, 풀뽑기, 마늘심기, 고추따기...
무슨일이 해도해도 끝이 없는지, 정말 점점 지쳐갔습니다.
똑같이 밖에 나가서 힘들게 일하고 와도, 저는 시부모님에 시숙님들의 식사준비에
쉴 틈 없고, 또 오후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운전도 할줄 모르던 저는 시아버님의 권유로 운전을 배웠고
결국 지게차까지 운전하게 되어, 나락벨때도 한몫 단단히 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제 무료한 삶이 계속될때쯤, 시내에 사는 형님이 경리로 취직하게 되셨다는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찌나 부럽던지... 심지어 화도 났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보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신랑에게 말했습니다.
"태호 돌지나면 나도 농사 안짓고 일다닐꺼니까 그런 줄 알아."
신랑은 흔쾌히 그러라 했고,
막내가 돌을 지내자마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취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 막내, 그 어린게 놀이방에 맡겨져서는
며칠간 울기만 하더랍니다. 그러다 차차 적응해 지금은 잘 돌게 됐구요.
처음엔 어찌나 속상하던지 그만둘까 했지만, 제 욕심에 그럴 순 없더라구요.
그런데 놀이방에 가기 시작한 후로는 절 대하는 아이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제가 오라고 해도 오지도 않고, 특히 아플땐 더 할머니만 찾네요.
제가 낯설게 느껴지는지, 아니면 욕심많은 엄마가 미워진건지...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제 아이들 위해서, 조금 더 벌고싶고
집에서 까맣게 그을린 채, 발전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긴 싫어서 그런건데.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나봅니다.
조금더자라면, 이 엄마의 마음 이해해 줄날이 있겠죠? 오늘도 웃으며 출근해봅니다.
사연 보내주신 김혜진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