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2일 방송분

풍족하진 않아도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랬기에 제 애교라면 세상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줄 듯한 아빠와

저와 제 남동생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항상 뒷바라지 해주시는 엄마.

그리고 둘 다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도 티격태격하는 남동생과

평범하게, 그리고 즐겁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죠.

제가 대학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는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디자인 전공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고, 저도 부족한 공부를

조금 더 큰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남겨진 식구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부모님께 무리를 좀 해주십사 부탁하고 이기적인 타국살이를 시작했죠.

그러기를 2년...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학업에 집중하기가 쉽지않아 포기했고, 가끔은 관광도하며

제가 꿈꾸던 공부를, 부모님의 도움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진 빚은 성공해서 갚으면 된다고 당연하게 말이죠.

제 전공에 대한 자신감을 잔뜩 가지고 귀국했어요.

앞으로 펼쳐질 제 미래만 생각했기에 무척 가볍고 신나는 마음으로 집을 찾았는데.

제가 떠나던 2년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었습니다.

어느새 자라버린 남동생은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집엔 사람의 손길이 닿은지 오래된 듯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엄만 한껏 야윈 모습으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깊개패인주름.

2년전에도 입었던 엄마의 예쁜 블라우스가 낡았기 때문인지

엄마의 얼굴이 많이 상해있어선지 그간 많이 늙어버린 엄마였어요.

그리고 아빤, 제가 떠나고 1년이 못돼 대장암 말기를 선고받으셨다고 합니다.

이왕 떠난거, 마음껏 공부하게 내버려 두라고, 절대 제겐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아빠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변함없는 모습인양,

제게 행복한 목소리를 꾸며 전화했고, 아빠 병간호에 힘든 살림에도

제 꿈은 꺾고 싶지 않아 항상 부족함 없이 용돈을 보내주셨던 거죠.

아빤 당초 선고받으셨던 6개월을 넘겨 절 만나겠다는 의지로 1년 넘게 투병중이십니다.

이기적인 딸 때문에 더욱 외로우셨을 병상에서 말이죠...

애써 평상심을 되찾으셨을 엄마의 안쓰러운 모습,

그리고 그간 무거운 짐을 저 대신 떠맡아 준 듬직한 남동생,

너무 미안합니다... 이젠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제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겁니다.

엄마아빠,, 그리도 동생 민혁아, 사랑합니다.

 
사연보내주신 김하연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