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등산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이었습니다.
등산모를 눌러쓰고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중년의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말을 건네왔습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마치 익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봤는지, 누구였는지...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봤으나 소용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난 대답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진 채 머리를 긁적거렸죠.
"참~, 은행 앞 청실홍실 모르세요?"...
그제서야 분식집 주방에 서 있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봄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해 4월, 길을 가다 배가 너무나 고파서
가게앞에 개업 축하 화환이 즐비한 분식집앞으로 들어갔었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하기위해 비빔밥을 시키고, 기다리고 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떡 한조각과 함께 비빔밥이 나오더군요.
빨갛게 비벼진 비빔밥과 구수한 국물맛이 무척 황홀했습니다.
속이 든든해서는, 만족한 얼굴로 계산을 하면서
"음식이 아주 맛있네요~ 자주 와야겠어요." 인사했었죠.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할때 제가 추천해 몇 번 함께 방문한 적도 있었고,
아내가 입덧이 심했을때도, 그 곳의 국물엔 밥을 몇술 넘기기도 해
가끔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10년이나 흘렀는데도.
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그간의 얘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부부는 개업 첫 손님으로 저를 맞았고, 음식솜씨에 자신이 없던터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식사중이던 저를 지켜보고 있는데,
음식이 아주 맛있다는 첫 손님의 칭찬에, 큰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 뒤, 부지런히 일해 지금은 5층짜리 건물까지 지었다고 자랑도 하시더라구요.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고 비빔밥이 맛있다는 한마디가,
두려움으로 일을 시작하는 그 부부에게 희망의 선물이 되었던겁니다.
아주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길 건너 건물을 가리켰습니다.
자기네 집이라면서요... 건물지어 입주하던 날,
제가 문득 생각나더라며, 남편과 개업 초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습니다.
가게로 언제든지 와도 좋으니, 만난 김에 집에 함께가서 차한잔 하기를 권하더군요.
따뜻한 한마디로 한 부부가 행복해지고, 그 부부로 인해
10년이 지난 지금의 제가 행복을 느끼니, 희망의 한마디 건네 볼만 하죠?
사연보내주신 장국진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