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우선 '기자질 15년'을 되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겠다. 나는 기자의 '기본'인 사실 확인에 충실했던가?
이렇게 자문하는 이유가 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실 확인'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기사 하나가 나왔다. '초등생의 번뜩이는 재치로 성추행범 검거'라는 기사다.
기자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린이 성범죄로 나라가 흉흉하지 않은가. 이 기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25일 저녁, 기자는 '재치를 발휘해 성추행범을 검거했다'는 초등학생들의 무용담을 취재하기 위해 경기도 고양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근데 담당형사가 뜻밖의 사실을 전했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 사건, 아니 이 기사의 뒤를 밟아보자. 우선 이 기사의 내용부터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돼 있다.
고양시 모 초등학교 5학년 A(11) 양 등 5명은 22일 오전 11시40분께 학교 운동장에서 40대 남자가 B(8.2학년) 양을 뒤에서 껴안으며 성추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A 양은 학교에서 배운 성범죄 예방 교육을 떠올리며 '나쁜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 2명과 함께 B 양에게 다가가 "엄마가 널 찾으시면서 12시까지 시계탑 앞으로 오라고 하셨어"라며 손을 잡고 학교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A 양은 곧바로 후문 앞에서 '어린이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문구점 주인이 지난 4월부터 경찰청으로부터 성범죄로부터 아동을 지키는 후견인인 '지킴이'로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나쁜 아저씨'의 인상착의를 알려줬고 문구점 주인은 즉시 경찰 핫라인으로 신고했다.
방학식날 교정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은
그럼 경찰 수사결과는 어땠을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성추행범'의 신원이다. 그는 올해 43살로,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홀로 외출하기에는 정신연령이 매우 낮은 이 40대 남성은 주로 집안에서 지냈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한 집안 어른들이 가급적 외출을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 장애남성의 아버지는 여든, 어머니는 일흔하나의 노인들이다.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와 잘 지냈지만 바깥출입을 못하게 하니 자주 볼 턱이 없었다. 내보내달라고 몇 차례 매달린 끝에 어머니로부터 '잠깐 외출'을 허락받았다. 동네 기차역까지 잠깐 바람이나 쐬라고 한 것이다.
모처럼 외출하게 된 이 장애남성은 G초등학교 정문이 열린 상태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달려가 이 학교 2학년생 여학생(8)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순간 이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하교 길에 웅성웅성 그 얘기를 하면서 지나갔다.
이 학교 후문과 가까이 있는 문구점 주인아줌마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어떤 아저씨가 2학년 여자아이를 뒤에서 끌어안았다고 말해줬다. 경기도 안양 '혜진.예슬 사건' 이후 전국에 2만 6천개나 마련된 어린이 안전 지킴이집 가운데 하나인 이 문구점 주인아주머니는 경찰 핫라인을 통해 즉각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학교 후문 300m 지점에서 40대 장애남성을 붙잡았다. 이 남성을 붙잡은 경찰은 곧장 조사에 들어갔다. 사건은 경기도 고양경찰서 형사통합3팀에 배당됐다.
이것이 경찰이 밝힌 사건의 전부다.
'성추행범'은 정신연령 5-6세의 정신지체 2급
또 하나의 사실이 있다. 이 장애남성에게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여동생이 있다. 여동생의 딸도 초등학교 2학년. 피해아동과 또래다.
담당형사는 이렇게 해석했다.
"학교 운동장 구령대에서 조카와 같은 또래 아이들이 놀고 있으니까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 뒤에서 살짝 안았다가 아이가 저항하니까 금세 내려놓은 것 같다. 죄의식이 없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학교 밖으로 빠져나가다가 경찰에 검거된 것이다."
담당 형사는 정상의 40대 남자가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할 목적이었다면 대낮에 그것도 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이 많은 상태에서 무조건 끌어안았겠냐고 문제제기를 했다. 피해를 당한 여 초등생과 장애남성을 각각 조사해보니 진술이 똑같았다는 것이다.
담당형사가 전한 또 한 구절의 얘기가 있다.
"이 장애남성은 저보다 나이가 많아요. 그런데도 제가 '아저씨가 맛있는 것 사줄까?' 하니까 '네! 고마워요' 했습니다. 몇 시간 조사받는 동안 화장실도 안 가길래 화장실 가고 싶으면 가도 된다고 했는데도 안 가요.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화장실 갈래?' 하니까 그때 따라나서더군요. 정신연령이 5~6세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고, 스스로 인지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오줌 누고 올게요'도 못하는 사람이 추악한 어린이 성범죄를 작심하고 벌였을까? 아니라고 봅니다."
검찰도 이 사건에 대해 보호자의 보증을 받고 신병을 풀라고 지휘했다. 정상인이라면 당연히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할 사건이었지만, 영장을 신청하기엔 피의자 상태가 온전치 못했던 것이다. 피해아동 부모도 사정을 들은 뒤에 "그 정도라면 마음으로라도 용서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담당형사는 전했다.
수사라인에서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된 사건이 '초등학생 영웅담'으로 비화된 것은 언론보도 때문이다. 이 통신사는 이 보도를 하면서 정신지체 장애인인 피의자를 '나쁜 아저씨'로 규정했다.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담당형사의 말이다.
"피의자 가족들이 엄청 항의했어요. 사회가 너무 각박해진 게 아니냐고 말입니다. 물론 저는 피의자 가족들에게 어린이 성범죄로 극도로 민감해진 때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달랬지만, 제가 보기에도 기자가 단편적인 것만 갖고 기사를 쓴 게 아닌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통신사 기자는 "이 기사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으면 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아무리 정신지체장애인이어도 성추행을 범한 사실은 인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도 했다.
'재치' 발휘한 초등학생 신원 확인 안돼
그럼 이건 어떨까? '엄마가 시계탑 앞에서 기다린다'며 피해 여학생의 손을 잡아 데리고 갔다는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의 신원이 좀체 확인이 되지 않는다.
통신사 기자는 경찰의 보도자료를 토대로 문구점 주인을 취재해 썼을 뿐 '5학년 여학생'을 직접 취재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거보고서를 통해 검거경위와 체포 유무만을 보고했을 뿐이라고 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검거보고서에 적시된 내용만 전달했을 뿐 그밖의 정보를 전달한 바는 없다"며 "시계탑 발언 등은 기자가 어디서 취재한 것인지 우리도 확인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구점 주인아줌마는 "보도된 대로"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몇차례 전화를 더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 편의 영웅담이 탄생했지만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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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쇼에서 관련 이야기를 들은게 정확히 언제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저처럼 영웅담은 듣고 뒷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법해서~
제가 본 기사 그대로 올려봅니다,
모닝쇼에서 물론 정정을 해주셨으리라 생각하지만
(제가 모닝쇼를 듣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혹시 모를 사람이 있을까봐~~~
수고하세요~ 세상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하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