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애미야~ 이번 주말에 올 거지? 그럼, 올 때..요즘 유행하는 루즈 하나만 사다다오..~”
한 달에 두 어번 시댁에 갈 즈음이면, 어머니께선 이렇듯 미리 전화를 주십니다.
이번엔 꽃 분홍 립스틱을 사다달라시는데..어떨 땐, 메이크업베이스를...
또 어떨 땐, 파운데이션을.....환갑을 훌쩍 넘기신 연세에도 어쩜 그리,
화장품 이름을 젊은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신지..신기할 따름이죠..
처음엔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집안일 하랴, 아이들 키우랴.... 저는 정말 결혼 후 제대로 된 화장품한번 사서
발라본 적이 없는데, 시골에서도 어머니께선 늘 화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주무시니, 어머니의 맨 얼굴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죠.
매번 갈 때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화장품만 사오라시니...
젊은 시절 많이 꾸미고 사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
헌데, 화장품을 사갈 때마다 주시겠다는 돈 받기도 민망해서 급구 거절했는데..
그 돈도 무시 못하겠더군요...슬슬 짜증도 났죠..
그래서 한번은 신랑에게 "어머니, 좀 이상하신 거 아냐?
그 연세에 무슨 화장을 그렇게 열심히 하셔? 직장 다니시는 것도 아니고...
화장품값이 나보다 열 배는 더 드실거야.......자기가 어머니께 말씀 좀 드려봐~!..."
제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저를 아주 한심한 듯 바라보더니,
“당신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아니면 관심이 없는 거야?”
다짜고짜 타박하는 신랑, 황당했는데...알고 보니...
어머니, 볼과 입술 사이 흉터가 있다고 하더군요...그게 보기 싫어 며느리에게도
감추고 싶으셨던거죠..사실, 좀 놀라긴 했지만, ‘나이 드신 분이 흉 좀 보이면 어때?!!’
하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는데..어머니께는 큰 콤플렉스였나 봅니다.
며느리인 제게조차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자이셨다는 걸
잊고 살았네요...
그 날 이후, 어머닐 좀 더 이해하게 됐구요...가끔 어머니께서 주신 화장품, 갖다 쓰니...
제 화장대도 덕분에 호강을 하네요....
오늘은 진달래꽃을 닮은 분홍 립스틱을 사러 가야겠습니다....
전주시 송천동 양은정씨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