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곱게 물든 단풍을 보면 코트 깃을 세우고 멀리 떠나고픈 생각이 듭니다
가을이라서 그런가요?
길을 걷다 보면 노란 국화가 눈에 많이 밟힙니다.
옛 선비들은 사군자 중 하나로 높은 품격과 기상을 가진 국화를 ‘一友’라 부르며 늘 가까이 했다지만 나한테만은 유독 국화는 슬픔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보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 한 켠이 아릿하고 저며 오는 아픔을 알까요?
어렸을 적 엄마는 꽃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봄이면 잎보다 먼저 피는 성급한 개나리를 시작으로 해가 짧아지는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마당가득 꽃으로 꽉 찼습니다. 언제나 마당의 꽃 마무리는 찬 서리가 내리도록 오래 머물다 가는 국화가 장식했습니다. 단연 꽃 중의 꽃은 국화지요. 오종종 잔 꽃망울을 물고 쉴 틈 없이 피워 올리는 국화도 멋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국화는 꽃이 달덩이마냥 커다란 대국이었죠. 엄마의 마음을 한껏 기쁘게 해 주시기 위해 아빠의 손길은 봄부터 바빠집니다.
시골에서 봄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지만 바쁜 손길만큼 아빠의 마음은 행복으로 분주하게 시작합니다. 겨울 동안 국화 뿌리를 품은 땅은 잘 삭힌 퇴비를 뿌려 둡니다. 그래야 이듬해 실한 잎이며 몸통 굵은 줄기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죠. 자른 줄기의 마디를 모래흙에 꽂아 정성으로 관리합니다. 뿌리가 잘 내린 놈으로 골라 특별 관리에 들어갑니다. 진딧물은 얼씬도 못 합니다. 시든 잎도 따 주고 중간 중간 순도 따 주고 지주대도 세워서 줄기가 곧게 자라도록 합니다. 그렇게 정성들여 키운 국화 화분은 처마 안쪽 토방에 일렬종대로 길게 늘어서죠. 마지막 무더위가 비껴가고 슬슬 바람 끝이 서늘해지면 아빠의 정성도 결실을 맺습니다. 그야말로 달덩이만한 국화가 탐스럽게 꽃을 피워내는 겁니다.
“참, 곱네요.”
엄마의 이 말 한마디면 아빠의 가을걷이도 끝납니다. 올해는 대풍이죠.
봄부터 커다란 국화를 피우기 위한 아빠의 부단한 노력은 바로 엄마에 대한 무뚝뚝한 아빠의 사랑이었던 겁니다.
어려서부터 가을이면 빼곡히 늘어선 국화화분은 우리 집의 당연한 풍경이었습니다. 마치 가을 들녘에 단풍드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알았습니다. 그게 엄마에 대한 아빠의 지순한 사랑표현인걸요.
엄마가 안 계신 시골집은 황량합니다. 해마다 보던 국화를 볼 수 없으니까요.
언젠가 아빠에게 물었죠. 이제는 국화를 왜 가꾸지 않으시냐고.
“ 잘 안 되드라. 중간에 죽어 버리고... 그래서 귀찮아서 이젠 안 할란다.”
올 가을에도 국화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아빠는 엄마를 못 잊나 봅니다. 국화만 보면 아빠도 엄마생각이 나는 가 봅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빠는 더 했나 봅니다.
국화만 보면 먼저 간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오늘도 길가다 마주친 국화 앞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국화가 슬픈 꽃이 아닌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기쁨의 꽃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년엔 아빠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국화꽃을 예쁘게 가꾸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엄마도 멋진 국화가 가득 피길 바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