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추석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5년 전.....
어머니는 며느리와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니만큼 뭔가를 보여주고
가르쳐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고민이 크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친구분들 말씀에 따르면 "며느리 군기는 첫 명절 때부터 확 잡아놔야 한다.
그리고 가풍이나 법도 있는 집안이란 것도 좀 보여주고....."
물론 살림만 40년 넘게 하신 다른 어머니들은 이런 게 쉬운 일 이었겠지만,
어머니는 오랜 직장생활에 살림재주 없기로는 동네에서 정평이 나 있으셨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아버지 고향이 이북이시라 친척 또한 없고, 제사 또한 지내지 않으니..
송편, 부침..심지어는 나물까지 사다가 드실 정도였다네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친구분들한테 조언도 듣고, 나물 등은 미리 무쳐보면서
실전에 대비를 하셨답니다.
드디어 디데이... 추석 전날... 현관문에 들어서자 거실 한가득 생선이며 과일...
음식거리들이 널려있더군요. 분명, 왠만한 건 다 사 드신다고 미리 신랑에게 들었는데
가지 수나 양 면에서 장난이 아니더군요.
다른 때와는 달리 근엄하신 목소리로 "얼른 손부터 씻고 오너라. 송편부터 빚자...."
저는 잘 배우라는 말씀하에...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죠...
그런데...송편 빚을 반죽은 물을 너무 많이 부어 도저히 빚을 수 없었고,
나물은 또 많이 대처 풀이 죽을대로 죽어 버렸습니다..
또한 전은 간이 맞지 않았고, 생선은 뒤집다가 두동강이가 나고...
오로지 제대로 준비된 건, 달랑 어머니의 유일한 기술인 탕 국 하나였죠.
지시한 게 모두 엉망이 되자, 어머니도 민망하셨던지..
“그래....요즘 세상에 이 조금을 누가 만들어 먹겠냐...너 힘드니까 그냥 사다 먹어야겠다..”
하시더군요. 저녁이 다 돼서야 평소 어머니께서 자주 애용하신다던 시장에서 대충 구입을 했죠.
그러면서 ...."아가야 힘들지? 나도 안하던 일 하려니까 여기저기 쑤시고 난리다.
내년부터는 우리 그냥 편하게 지내자" 하시더군요...
결국 어머니의 솔직 고백...인간미가 느껴졌구요..그 이후 명절은 형식을 파괴하고,
정말 평소 자신있게 만들 수 있고...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해 먹고 있답니다...
음식은 좀 못하시지만, 정 많고..자상한 어머니..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익산 신동 성혜진씨
감사합니다..